0449 中原高麗碑
五月中高麗太王祖王令▨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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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오월에 高麗 대왕 ... 東夷 寐錦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 동이 매금의 상하가 우벌성에 와서 교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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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 중원고려비의 내용은 東夷寐錦이 高麗大王에게 世世토록 兄如弟의 관계를 원하자 고려가 衣服과 敎를 내린다는 이야기다.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으로 보아 신라왕이 고려의 성까지 찾아간 듯하고 新羅土內幢主나 新羅土內衆人는 고려가 신라 영토 안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황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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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古牟婁城이 언급되고 있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석이 있는 충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의 369년과 512년 기록, 광개토왕릉비(414) 그리고 중원고려비(449)에 나오는 牟婁, 古牟婁 그리고 比利는 연대가 서로 멀지 않기 때문에 세 기록에 따로 나오더라도 각각 동일한 장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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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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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중원고려비(中原高麗碑)
東夷寐錦遝還來節敎賜寐錦土內諸衆人 동이 매금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자신들의 우두머리는 王이라 칭하고 신라의 우두머리는 寐錦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광개토왕릉비의 표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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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中原高麗碑
高麗大王이란 표현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新羅土內幢主란 표현은 건립 시기에 고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던 실정을 알려주며, 신라를 東夷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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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중원고려비(中原高麗碑)
東夷 매금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12월 23일 갑인에 東夷 매금의 상하가 우벌성에 와서 교를 내렸다. ▐ 여기서의 동이는 고려의 속국이었던 신라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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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9※ 古牟婁
❶ 중원고려비의 내용은 東夷寐錦이 高麗大王에게 世世토록 兄如弟의 관계를 원하자 고려가 衣服과 敎를 내린다는 이야기다.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으로 보아 신라왕이 고려의 성까지 찾아간 듯하고 新羅土內幢主나 新羅土內衆人는 고려가 신라 영토 안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황을 암시한다.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古牟婁城守事下部大兄에 나오는 古牟婁城은 신라와의 접경 지역에 있던 성으로 보인다. 당시 중원고려비 인근에는 고려 國原城이 있었으므로 이 성이 가장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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