仇道·于老
① 味鄒가 왕이 된 후 94년이 지나 조카 奈勿이 왕이 되는 것은 어색하므로 味鄒의 즉위 연도를 60년 뒤로 물린다. ② 仇道는 172년부터 활동하다 190년의 패전으로 좌천되는데 그의 아들 味鄒가 322년에 왕이 되는 것도 어색하므로 仇道 관련 기록도 120년 뒤로 물린다. ③ 于老는 231년부터 활동하다 249년에 왜인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그의 아들 訖解는 310년에 어린 나이로 왕이 된다. 이것도 불가능하므로 于老 관련 기록도 60년 뒤로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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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왜군에게 살해된 우로는 新羅 장수가 아니라 新羅왕이다."
▐ 왜가 신라를 침공하여 죽인 인물에 대해 일본서기(720)는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이라 하고 삼국사기(1145)는 신라 장수 우로(于老)라 했다. 가라가 포상8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신라의 원군을 인솔해간 장수를 삼국사기는 태자 우로라 소개해 놓았다. 우로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굳이 어린 아이를 왕으로 앉힌 이유로는 왕이 급사했고 그 아이가 태자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우로는 신라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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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우로(于老)
왜가 신라를 침공하여 죽인 인물에 대해 일본서기(720)는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이라 하고 삼국사기(1145)는 신라 장수 우로(于老)라 했다. 가라가 포상8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신라의 원군을 인솔해간 장수를 삼국사기는 태자 우로라 소개해 놓았다. 우로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굳이 어린 아이를 왕으로 앉힌 이유로는 왕이 급사했고 그 아이가 태자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우로는 신라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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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5 초기 新羅의 영토 확장
▐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召文國(185 의성 仇道) → 甘文國(231 김천 于老) → 骨伐國(236 영천) → 達伐城(261 대구)의 순으로 확장했다고 되어 있으나, 먼 곳부터 먼저 병합하는 어색함이 있다. 구도와 우로의 연대를 60년 뒤로 물리면 骨伐國(236 영천) → 召文國(245 의성 仇道) → 達伐城(261 대구) → 甘文國(291 김천 于老)의 순이 되어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면 槐谷(255 괴산) 또한 315년으로 옮겨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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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❺ 騶를 鄒牟로 보는 이유
한서(82)에서 고구려후 騶가 왕망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1145)에서 고구려 장수 延丕가 살해된 이야기로 바뀌어 나오는 것은, 일본서기(720)에서 신라왕 宇流助富利智干이 왜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에서 신라 장수 于老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경우가 비슷하여 모두 왜곡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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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于老)
우로는 291년에서 309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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