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0023 魏略(265±)
20~23년에 廉斯鑡이 辰韓의 右渠帥가 되어 樂浪의 토지가 비옥하다는 말을 듣고 도망가려고 살던 부락을 나오다 漢人 호래를 만났다. 그는 3년 전에 천 5백 명과 함께 나무를 베다 韓의 습격을 받아 노예가 되었다고 하였다. 鑡이 호래를 데리고 含資縣으로 가 郡에 연락하자 郡은 鑡을 통역으로 삼아 수초 사이로 큰 배를 타고 辰韓에 들어가 잡혀간 천여명을 데려갔다. 5백명은 이미 죽은 뒤여서 辰韓이 보상으로 진한인 만 5천명과 弁韓布 만 5천필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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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0~0023 위략(265?)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착은 호래를 데리고 출발하여 含資縣으로 갔다. 함자현에서 군에 연락을 하자 군은 착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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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其後絕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漢時屬樂浪郡 四時朝謁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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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 滿朝鮮 말기에 相 韓陰이 있었다. 韓準이 滿에게 쫓겨나 韓王을 칭했는데도 滿朝鮮에서 韓씨가 벼슬을 했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韓準의 후손이 절멸되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韓準이 滿에게 쫓겨나 韓王을 칭했다'는 이야기는 한나라에 투항한 韓씨가 滿朝鮮이 망한 뒤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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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三國志
20-23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살던 부락을 나오다가 밭에서 참새를 쫓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말은 한인(韓人)의 말이 아니었다.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인(漢人)으로 이름은 호래다. ... 함자현에서 낙랑군에 연락을 하자, 군은 염사착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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