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5 위서(554)
세조 때에 쇠(釗 고국원왕)의 증손 련(璉 장수왕)이 처음으로 사신 안동을 파견하여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치면서 아울러 나라 이름을 물었다. 세조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조명으로 제계의 이름 자(字)를 그 나라에 내려 주고 원외산기시랑 이오를 파견하여 련을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배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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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35 魏書(554)
이오가 그들이 사는 평양성에 이르러 그 나라의 여러 곳을 방문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요동에서 남쪽으로 일천여리 떨어진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栅城, 남쪽으로는 小海에 이르고 북쪽은 예전의 부여에 이른다." ▐ 栅城은 삼국지(289)에 나오는 買溝 또는 置溝婁로 보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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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35 위서(554)
遼東南一千餘里 東至柵城 南至小海 北至舊夫餘 民戶參倍於前魏時 ●其地東西二千里 南北一千餘里 요동에서 남쪽으로 1천여리 떨어진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책성, 남쪽으로는 소해에 이르고, 북쪽은 예전의 부여에 이른다. 민호의 수는 전 위나라 때보다 3배가 많았다. 그 나라는 동서가 2천여리이며 남북은 1천여리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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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璉
세조(북위 탁발도 408-452) 때에 쇠(釗)의 증손 연(璉)이 처음으로 사신 안동을 파견하여 표를 올리고 방물을 마치면서 아울러 국휘를 청하였다. -- 국휘는 이름을 짓거나 기록을 남길 때 황제의 이름 글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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