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02 高麗史節要(1452)
최영이 여러 재상과 함께 定遼衛를 공격할지와 화친을 청할지의 가부를 논의하였는데, 모두 화친하자는 의논을 따랐다. 遼東都司에서 이사경 등을 파견하여 압록강을 건너와 방을 붙여 이르기를, “호부에서 성지를 받들었는데, ‘鐵嶺迤北迤東迤西元屬開原 所管軍民漢人女眞達達高麗 仍屬遼東 철령의 북쪽·동쪽·서쪽은 원래 개원에 속하니, 관할하는 군민 가운데 한인·여진·달달·고려인은 그대로 요동에 속하게 하라.’는 것이었다.”라고 하였으므로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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