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 魏略(265±)
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 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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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95? 魏略(265?)
及漢以盧綰為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綰反 入匈奴 燕人衞滿亡命 為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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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0~0023 「三國誤記」 三國志·魏略
至王莽地皇時 廉斯鑡為(辰韓→)馬韓右渠帥 聞樂浪土地美 人民饒樂 亡欲來降 出其邑落 見田中驅雀男子一人 其語非韓人 ▐ 馬韓에 대한 설명이므로 辰韓은 馬韓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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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誤記」 三國志(魏略)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가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姓韓氏➔不改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준의 아들과 친척 중에 남은 사람들도 있는데 한씨 성을 바꾸지 않았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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