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다루가치가 된 이안사
원나라에서 〈목조(穆祖)를 위해〉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금패(金牌)를 내려 주어 남경(南京) 등처(等處) 오천호소(五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로 삼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겸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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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5 朝鮮王朝實錄
1255년에 산길이 이 사실을 원나라 황제에게 알리니 원나라에서 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금패를 내려 주어 南京 등처 五千戶所의 首千戶로 삼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겸하게 하였다. 斡東은 南京 동남쪽 90여 리에 있으니, 지금의 慶興府 동쪽 30리에 떨어져 있다. 알동의 서북쪽 1백 20여 리에 豆門城이 있고 또 그 서쪽 1백 20여 리에 斡東沙吾里가 있으니 沙吾里는 여진 말로서 참이다. 참이 관동 알동의 관내에 있는 까닭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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