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36권100] 知六縣
신라 熊州 富城郡 地育縣의 백제 때 지명.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都督府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知留를 都督府 支潯州 소속의 平夷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으니, 知留는 곧 知六縣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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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142] 進禮郡
신라 全州에 속한 郡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錦山郡 錦山邑. 고려가 縣令으로 낮추었다. 충렬왕이 知錦州事로 높였다. 조선 태종이 錦山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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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147] 淸渠縣
신라 全州 進禮郡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北道 鎭安郡 龍潭面. 고려 충선왕이 龍潭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縣令으로 삼았다. 조선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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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00] 鎭安縣
신라 全州 壁谿郡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北道 鎭安郡 鎭安邑. 고려 초에 全州의 屬縣으로 삼았다. 뒤에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이 縣監으로 삼았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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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01] 難珍阿縣
신라 全州 壁谿郡 鎭安縣의 백제 때 지명. 다른 기록에는 月良이라고도 나온다. 다른 기록에는 難知可縣이라고도 나오며, 三國史節要 권12 宣德王 4년(783)조에는 難知可‘郡’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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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04] 長水縣
신라 全州 壁谿郡 高澤縣(장수읍)의 고려시대 지명. 高澤縣을 고려 초에 長水縣으로 이름을 고쳐 南原府의 屬縣으로 삼았다. 공양왕이 長溪(장수군 계내면)를 겸임케 하였다. 조선 태조가 다시 나누어 長水縣으로 삼고 長溪監務를 겸하게 하였다. 태종이 縣監으로 고쳤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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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84] 欿平郡
신라 武州 昇平郡(순천시)의 백제 때 지명. 다른 기록에는 武平 또는 沙平이라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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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85] 昇州
신라 武州 昇平郡(순천시)의 고려시대 지명. 昇平郡을 고려 성종이 昇州兗海軍節度使로 삼았고, 정종이 다시 昇平郡으로 고쳤다. 충선왕이 높여서 昇州牧으로 고쳤다가 順天府로 이름을 고쳐 낮추었다. 조선 태종이 都護府로 고쳤다. 효종이 縣으로 낮추었다가 얼마 뒤에 府로 복구하였다. 정조가 縣으로 낮추었다가 이듬 해에 다시 높였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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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88] 麗水縣
신라 武州 昇平郡 海邑縣(여수시)의 고려시대 지명. 海邑縣을 고려가 麗水縣으로 이름을 고쳤고, 충정왕이 縣令을 두었다. 조선 태조가 다시 順天府에 속하게 하였으며, 麗水廢縣은 順天府 동쪽 60리에 있었다. 고종이 郡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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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89] 晞陽縣
신라 武州 昇平郡(순천시)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光陽市 光陽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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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92] 廬山縣
신라 武州 昇平郡(순천시)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麗川郡 突山邑. 고려가 옛날 이름인 突山縣을 회복하여 그대로 昇平郡의 屬縣으로 삼았다. 조선 성종이 鎭을 설치하였다가 뒤에 폐지하였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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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93] 突山縣
신라 武州 昇平郡 廬山縣(여천군 돌산읍)의 백제 때 지명. 다른 기록에는 突山鄕이라고도 나오니, 본서 권12 신라본기 경애왕 4년(927) 4월조에 康州所管의 突山等 四鄕이 고려 太祖에게 귀부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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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94] 谷城郡
신라 武州(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한 郡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谷城郡 谷城邑. 고려 초에 羅州의 屬郡으로 삼았고, 명종이 監務를 두었다. 조선이 縣監으로 고쳤다. 선조가 南原에 넣었고, 광해군이 다시 縣을 설치하였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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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96] 富有縣
신라 武州 谷城郡(곡성군 곡성읍)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順天市 住岩面. 고려 초에 順天府의 屬縣으로 삼았으며, 富有廢縣은 順天府 북쪽 60리에 있었다. 大東輿地圖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순천시 주암면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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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298] 求禮縣
신라 武州 谷城郡(곡성군 곡성읍)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求禮郡 求禮邑. 고려 초에 南原府의 屬縣으로 삼았고, 인종이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이 縣監으로 고쳤다. 燕山君이 폐지하여 部曲으로 삼아 南原에 속하게 하였다. 중종이 다시 縣으로 삼았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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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300] 同福縣
신라 武州 谷城郡(곡성군 곡성읍)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全羅南道 和順郡 同福面. 고려 초에 寶城郡의 屬縣으로 삼았고, 뒤에 높여서 監務로 삼았다. 조선 태조가 和順監務를 겸하게 하였다. 태종이 和順에 합쳐서 福順이라고 개칭하였다가, 뒤에 각기 복구하여 縣監으로 삼았다. 효종이 和順에 넣었고, 현종이 복구하였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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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34] 目牛縣
신라 熊州 伊山郡(예산군 덕산면)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洪城郡 葛山面 雲谷里 일대인 듯. 고려가 高丘縣으로 이름을 고쳤고, 현종이 運州(홍성군 홍성읍)의 屬縣으로 삼았다. 洪州 서쪽 30리에 있었다고 하니, 里數로 따져 보아 현재의 갈산면 운곡리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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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39] 槥城郡
신라 熊州에 속한 郡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唐津郡 沔川面. 고려 현종이 運州의 屬郡으로 삼았으며, 뒤에 監務를 두었다. 충렬왕이 知沔州事로 높였다. 조선 태종이 沔川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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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45] 餘美縣
신라 熊州 槥城郡 餘邑縣의 고려시대 지명. 餘邑縣을 고려 초에 餘美縣으로 이름을 고쳤고, 현종이 運州의 屬縣으로 삼았다. 예종이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이 貞海縣(서산시 해미면)과 합쳐 海美縣으로 이름을 고치면서 貞海를 치소로 삼았다. 東國輿地勝覽에서 옛 餘美縣은 海美縣 북쪽 30리에 있었다고 하니, 고려시대 餘美縣의 위치는 瑞山市 雲山面 北端의 餘美里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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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46] 新平縣
신라 熊州 槥城郡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唐津郡 新平面. 고려 현종이 運州의 屬縣으로 삼았다. 洪州 북쪽 90리에 있어서, 沔川郡 東村을 넘어서 들어간다고 하니,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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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0] 潔城郡
신라 熊州(공주시)에 속한 郡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洪城郡 結城面. 고려 현종이 運州(홍성읍)의 屬郡으로 삼았으며, 명종이 結城郡으로 이름을 고치고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이 縣監으로 고쳤다. 영조가 保寧(보령시 주포면)에 넣었다가 뒤에 복구하여 縣으로 삼았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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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3] 新村縣
신라 熊州 潔城郡 新邑縣의 백제 때 지명. 다른 기록에는 沙村이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7 지리지에 나오는 당나라의 都督府 설치 계획서에 따르면 이 곳을 都督府 직속의 散昆縣으로 고치려 한 적이 있었다. 신촌현의 治所로는 현재의 충남 保寧市 周浦面 鳳堂里 鳳堂城(=古南山城)과 주포면 保寧里(面所) 동쪽 鎭堂山에 있는 唐山城이 비정 가능하되, 6세기 전반까지는 봉당산성이었다가, 그 이후에는 당산성으로 옮겼으리라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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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4] 保寧縣
신라 熊州 潔城郡 新邑縣의 고려시대 지명. 新邑縣을 고려 초에 保寧縣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현종이 運州의 屬縣으로 삼았다. 예종이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이 縣監으로 고쳤다. 효종이 府로 높였다가 뒤에 다시 縣으로 낮추었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東國輿地勝覽 保寧縣 山川條에 地乙峴 즉 질고개가 縣東 5리에 있고 大川이 縣南 24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조선시대의 保寧縣 治所는 현재의 保寧市 周浦面 保寧里(面所) 保寧邑城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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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5] 新良縣
신라 熊州 潔城郡(홍성군 결성면)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洪城郡 長谷面 廣城里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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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6] 沙尸良縣
신라 熊州 潔城郡 新良縣(홍성군 장곡면)의 백제 때 지명. 다른 기록에는 沙羅라고도 나온다. 본서 권3 신라본기 慈悲麻立干 17년(474)조에 沙尸城 축성 기사가 나오고, 권6 신라본기 문무왕 원년(661) 9월조에 沙尸山郡太守 哲川 등이 나오는데, 그 沙尸城 및 沙尸山郡과 같은 곳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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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87] 黎陽縣
신라 熊州 潔城郡 新良縣(홍성군 장곡면)의 고려시대 지명. 고려가 黎陽縣으로 고치고 監務를 두었다. 현종이 運州(홍성군 홍성읍)의 屬縣으로 삼았으며, 洪州 남쪽 37리에 있었다. 大東輿地圖와 비교해 볼 때, 현재의 洪城郡 長谷面 廣城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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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95] 富城郡
신라 熊州에 속한 郡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瑞山市. 고려 인종이 縣令으로 고쳤으며, 명종이 官號를 없앴다. 충렬왕이 瑞山으로 이름을 고치고 知郡事로 높였다가 뒤에 瑞州牧으로 높였다. 충선왕이 瑞寧府로 낮추었고 뒤에 또 知瑞州事로 낮추었다. 조선 태종이 다시 瑞山郡으로 고쳤다. 숙종이 縣으로 낮추었다가 다시 복구하였다. 영조가 縣으로 낮추었다가 다시 복구하였다. 정조가 縣으로 낮추었다가 다시 복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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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36권97] 蘇泰縣
신라 熊州 富城郡의 領縣의 하나로서, 현재의 忠淸南道 泰安郡 泰安邑. 고려 현종이 運州의 屬縣으로 삼았다. 충렬왕이 泰安으로 이름을 고치고 知郡事로 높였다. 조선이 그대로 두었다. 본서 신라본기 애장왕 8년(804)조에 蘇大縣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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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溪縣
신라 全州 進禮郡 丹川縣(무주군 무주읍)의 고려시대 지명. 丹川縣을 고려가 朱溪縣으로 고쳐 그대로 進禮縣에 속하게 하였다. 명종이 茂豊監務가 와서 겸임토록 하였고, 공양왕이 茂豊에 병합시켰다. 조선 태종이 茂朱縣으로 이름을 고쳐 縣監을 두고 朱溪를 治所로 삼았다. 현종이 錦山郡 安城·橫川의 두 面을 떼어내 병합시키고 府로 높였다. 고종이 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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