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0030 後漢書(445) 循吏列傳
▐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 사건과 비슷한 경우다. 王以耽羅不修貢賦親征 至武珍州 耽羅聞之 遣使乞罪 乃止 (동성왕이 탐라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그를 직접 치려고 무진주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
http://qindex.info/i.php?x=7329
 0498.08 三國史記(1145)
왕이 탐라가 공물과 부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직접 정벌하려고 무진주에 이르니 躭羅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 죄를 빌었으므로 그만두었다(躭羅는 곧 躭牟羅이다).
http://qindex.info/i.php?x=232
 0498.08 三國史記(1145)
▐ 무진주는 영산 지역에 있고 영산 지역은 이 당시에 전방후원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백제의 왕이 왜 이 지역을 지날 수 있었는지는 일본서기에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동성왕은 倭가 세운 백제왕이기 때문이다. 동성왕이 倭가 주었던 탐라를 치는 것은 倭의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倭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http://qindex.info/i.php?x=39231
 0498.08 三國史記(1145)
▐ 498년에 백제 동성왕이 무진주에 이르렀을 때 탐라가 항복해 온 것은 391년에 倭와 백제의 연합군이 고해진에 이르렀을 때 침미다례가 항복해 온 것과 유사하다. 탐라는 육지의 상황을 지켜보다 침공의 정보가 있으면 미리 항복하여 그것을 방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http://qindex.info/i.php?x=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