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7 三國史記(1145)
髙墟村의 우두머리인 소벌공이 楊山의 기슭을 바라보니 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29366
 -0057 三國誤記 徐那伐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 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시조의 이름은 혁거세이다. -57년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신라왕의 성이 처음 나타난 것은 521년의 일이다.
http://qindex.info/i.php?x=26132
 -0057 「三國誤記」 新羅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 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시조의 이름은 혁거세이다. -57년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신라왕의 성이 처음 나타난 것은 521년의 일이다.
http://qindex.info/i.php?x=8219
 -0057 三國史記(1145)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조선의 유민은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기록에는 없지만 위만조선이 망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유민으로 볼 수도 있다.
http://qindex.info/i.php?x=5795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26774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26787
 -0057 三國史記(1145)
髙墟村의 우두머리인 소벌공이 楊山의 기슭을 바라보니 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 이곳이 楊山 기슭이라면 楊山은 남산이다.
http://qindex.info/i.php?x=26784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29331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29334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29400
 -0057 三國史記(1145) 新羅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http://qindex.info/i.php?x=32541
 -0057 三國史記(1145) 新羅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居西干辰言王 或云呼貴人之稱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혹은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http://qindex.info/i.php?x=16494
 1145 三國史記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觜山) 진지촌(珍支村 干珍村), 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7372
 1145 三國史記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6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이 6부인들이 혁거세를 왕으로 세우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했다.
http://qindex.info/i.php?x=5787
 1145 三國史記
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나정 옆 수풀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이에 가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이 있어, 이를 갈라보니 갓난아이가 나왔다. 거두어 길렀는데, 나이 10여 세가 되자 재주가 특출하고 숙성하였다. 6부인들은 그 출생이 신이하므로 이를 받들고 존경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받들어 임금으로 삼은 것이다. 진인(辰人)은 박(瓠)을 박(朴)이라 했고 처음에 큰 알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박(朴)으로 성을 삼았다
http://qindex.info/i.php?x=15637
 1145 三國史記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이전에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조선의 유민은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기록에는 없지만 위만조선이 망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유민으로 볼 수도 있다.
http://qindex.info/i.php?x=14803
 1145 三國史記
髙墟村의 우두머리인 소벌공이 楊山의 기슭을 바라보니 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26788
 1145 三國史記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即位 號居西干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 居西干辰言王 或云呼貴人之稱 시조의 성은 박이고 이름은 혁거세다. 즉위하여 호칭을 거서간이라고 하였다. 진한 사람들이 표주박을 일컬어 박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큰 알이 표주박처럼 생겼으므로 이로 인해 박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혹은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http://qindex.info/i.php?x=27824
 1145 三國史記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30648
 1145 三國史記 - 혁거세
http://qindex.info/i.php?x=5469
 1145 국사편찬위원회
赫은 '붉다', '밝다', '빛나다'는 의미를 지닌 한자어다. 성씨로 알려진 朴도 '밝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朴赫居世의 朴赫은 같은 말의 중복이 된다. 弗矩內王(붉은 왕, 밝은 왕)이라는 이칭이 전하는데, 赫이 '붉', '밝'의 훈차임을 잘 보여준다. 居世는 居西干에서 干을 수식하는 용어 居西를 후대인들이 시조 이름의 일부라고 오해한 것일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27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