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髙句麗本紀 02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하였다.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더니 마주 대하며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었다. 蛙(개구리)를 蝸(달팽이)로 쓰기도 한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바로 하늘이 나에게 후사를 내려주신 것이다.”라고 하며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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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3
후에 재상 아란불이 말하였다. “일전에 하늘이 저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에게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는 그곳을 피하라. 동해 물가에 땅이 있어 이름을 가섭원이라 하는데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이 자라기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옛 도읍에는 어떤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칭하며 와서 도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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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4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만났다. 물으니 말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나가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저를 웅심산 아래 압록강 인근의 방 안으로 꾀어 사통하고 곧바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고 꾸짖어 마침내 우발수에서 귀양살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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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5
魏書 → 三國史記
┆ 朱蒙母河伯女 為夫餘王閉於室中 → 金蛙異之 幽閉於室中
┆ 為日所照 引身避之 日影又逐 → 爲日所炤 引身避之 日影又逐而炤之
┆ 既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 → 因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許
┆夫餘王棄之與犬 犬不食 棄之與豕 豕又不食 → 王棄之與犬豕 皆不食
┆棄之於路 牛馬避之 → 又棄之路中 牛馬避之
┆後棄之野 眾鳥以毛茹之 → 後棄之野 鳥覆翼之
┆ 夫餘王割剖之 不能破 遂還其母 → 王欲剖之 不能破 遂還其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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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5
금와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었는데, 해가 비추어 몸을 끌어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따라와 비쳤다. 그로 인하여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정도 되었다. 왕이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다시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나중에는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이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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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6
그 어미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아이가 껍질을 부수고 나왔는데 골격과 의표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나이가 겨우 7살이었음에도 영리함이 범상치 않아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는 까닭에 그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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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07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 늘 주몽과 함께 놀았으나 그 재주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하기를,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며, 그 사람됨이 용감합니다.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청컨대 그를 제거하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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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10
魏書 → 三國史記
┆ 朱蒙乃與烏引烏違等二人 棄夫餘 東南走 中道遇一大水 欲濟無梁 → 朱蒙乃與鳥伊摩離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淲水 (一名盖斯水 在今鴨綠東北) 欲渡無梁
┆ 夫餘人追之甚急 朱蒙告水曰 →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 我是日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兵垂及 如何得濟 → 我是天帝子 何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
┆ 於上魚鱉並浮 為之成橋 朱蒙得渡 魚鱉乃解 追騎不得渡 → 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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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10
주몽이 오이·마리·협보 등 세 명과 가다가 엄사수(개사수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에 이르러 건너려고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추격해오는 병사들이 닥칠까 두려워 물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도망하여 달아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해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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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11
魏書 → 三國史記
┆ 朱蒙遂至普述水 遇見三人 → 朱蒙行至毛屯谷 (魏書云 至音述水) 遇三人
┆ 其一人著麻衣 → 其一人着麻衣
┆ 一人著納衣 → 一人着衲衣
┆ 一人著水藻衣 → 一人着水藻衣
주몽이 가다가 모둔곡에 이르러 (위서에는 음술수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명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삼베옷를 입었고, 한 명은 기운 옷를 입었으며, 한 명은 수초로 엮은 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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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12
주몽이 묻기를 “그대들은 누구인가? 성과 이름은 무엇인가?”라 하였다. 삼베옷을 입은 자가 “재사입니다.”라 하였고 기운 옷을 입은 자가 “무골입니다.”라 하였으며 수초로 엮은 옷을 입은 자가 “묵거입니다.”라 하였으나 성씨는 말하지 않았다. 주몽이 재사에게 극씨, 무골에게 중실씨, 묵거에게 소실씨라는 성씨를 주고 말하였다. “내가 바야흐로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세 명의 현명한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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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髙句麗本紀 13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기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위서에는 흘승골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자연 지세가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단지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를 성씨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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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1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하였다.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더니 마주 대하며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었다. (蛙개구리를 蝸달팽이로 쓰기도 한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바로 하늘이 나에게 후사를 내려주신 것이다.”라고 하며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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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2
재상 아란불이 “일전에 하늘이 저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에게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다. 너희는 그곳을 피하라. 동해 물가에 땅이 있으니 이름을 가섭원이라 하는데,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이 자라기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라며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옛 도읍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칭하며 도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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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3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대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만났다. 물으니 말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나가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저를 웅심산 아래 압록강 인근의 방 안으로 꾀어 사통하고 곧바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고 꾸짖어 마침내 우발수에서 귀양살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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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4
금와가 방 안에 가두었는데, 해가 비추어 몸을 끌어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따라와 비쳤다. 그로 인하여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정도 되었다. 왕이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가 없자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미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아이가 껍질을 부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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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5
골격과 의표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7살이 되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을 잘 쏘는 것을 朱蒙이라 하는데 그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재주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맏아들 帶素가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며 용감합니다.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그를 제거하소서.”라고 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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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6
주몽이 날랜 말을 알아보고 먹이를 줄여 야위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은 살찐 말을 자신이 타고 마른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후에 들판에서 사냥하였는데, 주몽이 활을 잘 쏘기 때문에 화살을 적게 주었으나, 주몽이 잡은 짐승이 매우 많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주몽의 어머니가 이를 알아차리고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한다. 머물다가 욕을 당하는 것보다 멀리 가서 뜻을 이루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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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高句麗 7
주몽이 烏伊·摩離·陜父 등 세 명과 친구가 되어 가다가 엄사수(일명 개사수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에 이르렀으나 다리가 없었다. 물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달아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해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http://qindex.info/i.php?x=23509
• 1145 三國史記 高句麗 8
주몽이 가다가 모둔곡에 이르러(위서에는 음술수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명을 만났다. 그 능력을 살펴 각기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위서에는 흘승골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자연 지세가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단지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高를 성씨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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