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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은 왕경인이다. 12세조 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후한(後漢) 건무 18년 임인에 구봉에 올라 가락(駕洛)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加耶)라고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金官國)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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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2 三國史記(1145)
김유신은 왕경인이다. 12세조 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후한(後漢) 건무 18년 임인 구봉에 올라 가락(駕洛)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加耶)라고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金官國)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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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① 南加耶
김유신의 12세조 首露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42년에 龜峯에 올라 駕洛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加耶라고 하였다가 뒤에 金官國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南加耶의 시조 首露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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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① 南加耶
▐ 加耶와 南加耶는 이름이 같아도 뿌리는 별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서기(720)에서도 加羅와 南加羅가 같은 뿌리였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령의 加耶와 김해의 加耶는 우연히 이름이 같았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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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김유신은 왕경인이다. 12세조 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후한 건무 18년에 구봉에 올라 駕洛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加耶라고 하였다가 뒤에 金官國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南加耶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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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庾信碑亦云 軒轅之裔 少昊之胤 則南加耶始祖首露 與新羅同姓也 유신비에 또한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남가야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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