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91) 06
遣樓船將軍楊僕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右渠發兵距險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齊)를 따라 발해에 배를 띄우고, 5만의 군사를 이끈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하여 우거를 토벌하게 하였다. 우거는 군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준비하였다.
http://qindex.info/i.php?x=14782
 史記(-91) 07
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 敗散 多還走 坐法斬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即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將軍楊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http://qindex.info/i.php?x=14783
 史記(-91) 07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도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참형을 당하였다. 누선은 제나라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는데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엿보아 알고, 곧 성을 나와 누선을 치니 누선군은 패해 흩어져 도망갔다. 장군 양복은 그의 군사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http://qindex.info/i.php?x=14812
 史記(-91) 08
天子為兩將未有利 乃使衞山因兵威徃諭右渠 右渠見使者頓首謝 願降 恐兩將詐殺臣 今見信節 請服降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饋軍糧
http://qindex.info/i.php?x=14909
 史記(-91) 08
천자는 양 장군의 전세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기고, 위산으로 하여금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양 장군이 신을 속여서 죽일까 두려워했는데, 이제 신절을 보았으니 항복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바침과 아울러 군량미를 내주었다.
http://qindex.info/i.php?x=170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