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1451)
여진의 병사 수만 명이 와서 雄州를 포위하였다. 그 때 척준경이 성 안에 있었는데, 州守가 말하여 이르기를, “성을 지키는 것이 오래되어 군량이 떨어질 것 같은데 밖에서 도움이 오지 않으니, 공이 성을 나가서 군대를 거두고 돌아와 성 안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사졸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까 두렵습니다.”라 하였다. 척준경은 밤에 줄을 타고 성에서 내려와서 定州로 돌아가 군사를 정돈하여 通泰鎭을 통과하고 也等浦에서 吉州까지 적을 만나 싸워 크게 패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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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史(1451)
권지승선 왕자지가 公嶮城에서 병사를 거느리고 도독부로 오다가, 갑자기 오랑캐의 추장 史現의 병사를 만나 싸우다가 패하고 타고 있던 말까지 잃어버렸다. 척준경이 즉시 굳센 병졸을 이끌고 가서 구원하고 적을 물리쳤으며 갑옷 입은 말까지 잡아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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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史(1451)
1108년에 윤관과 오연총이 정예병사 8,000명을 거느리고 加漢村 병목의 작은 길로 나갔다. 적이 갑자기 공격하니 군사가 모두 궤멸되고 10여명만 남았다. 적이 윤관 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고 오연총은 화살에 맞았다.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이끌고 와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돌진하여 10여 명을 때려 죽였다. 최홍정과 이관진 등이 골짜기에서 병사를 이끌고 오니 적이 포위를 풀고 도망갔다. 윤관 등은 날이 저물자 돌아와 英州城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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