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2 고려사절요(1452) - 楊水尺
남녀가 섞여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도적떼가 아니라 부족의 무리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200여 마리의 말이 있었다는 점에서 농경민이 아니라 유목민이었다는 짐작도 할 수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양수척은 1216년 기록에 나오는 양수척과 달라 보인다.
그래서 화척은 원래 흘러온 유목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정착 농경민의 시각에는 기존의 양수척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아, 그 둘을 구별하지 않게 되었다는 추정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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