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289) 37
其四年 倭王復遣使大夫伊聲耆掖邪狗等八人 上獻生口倭錦絳青縑緜衣帛布丹木□短弓矢 掖邪狗等壹拜率善中郎將印綬 243년에도 왜왕은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성기와 액사구 등 8인을 파견하여 생구, 왜금, 강청겸, 면의, 백포, 단목, 부, 단궁시를 바쳤다. 액사구 등은 솔선중랑장의 인수를 똑같이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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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289) 38
其六年 詔賜倭難升米黃幢 付郡假授 245년에 조서를 내려서 왜의 난승미에게 황당을 하사하고 군을 통해서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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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289) 39
其八年 太守王頎到官 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王卑彌弓呼素不和 遣倭載斯烏越等詣郡說相攻擊狀 遣塞曹掾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 拜假難升米為檄告喻之 247년에 태수인 왕기가 관부에 도착하였다. 왜의 여왕 비미호는 구노국의 남왕인 비미궁호와 본래부터 불화하여 왜인 재사와 오월 등을 군에 파견하여 서로 공격한 상황을 보고하였다. 새조연사인 장정 등을 파견하고 아울러 조서와 황당을 보내고 난승미에게 수여하고 격문을 만들어서 알리고 깨닫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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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289) 40
卑彌呼以死 大作冢 徑百餘步 徇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壹與 年十三為王 國中遂定 비미호가 마침내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지름이 1백여 보였고 순장된 자는 노비 1백여 명이었다. 새롭게 남자 왕을 세웠으나 국중의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아서 다시 서로 주살하여 당시 피살된 사람의 수가 1천 명이었다. 다시 비미호 종실의 여자인 일여를 세웠는데 나이 13세에 왕이 되었지만 국중은 마침내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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