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1860 氏·召史·姓
양반가를 중심으로 한 상류층 기혼 여성은 성 뒤에 氏라는 호칭을, 평민층은 召史, 향리와 중인을 위시한 중간층은 姓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1678년 각각 22%와 65.4%였던 召史로 불린 여성과 이름을 쓰는 여성은 1860년 각각 4.7%와 1%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16~7세기 하나의 계층으로 자리 잡은 중인들이 스스로를 평민층과 구분 짓기 위해 18세기 중엽부터 쓰기 시작한 姓도 19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사용비율이 크게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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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9~1783 李召史→李姓→李氏→李姓
경상도 단성현(오늘날 경남 산청군) 도산면에 살았던 평민 남성 김광오의 부인은 1759년 李召史로 불리다가 3년 뒤 남편의 직역이 중간층인 業儒(유학을 닦는 서자)로 상승하면서 李姓으로 바뀐다. 1780년 남편이 상류층인 幼學(벼슬 없는 유생)이 되자 李氏로 불리다가 1783년 남편이 중간층 校生(평민 출신으로 향교에 다니던 생도)으로 신분이 낮아지자 다시 李姓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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