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0~0534※ 송산리 29호분, 6호분 그리고 7호분
▐ 백제 박산로는 박산로의 본향인 중국에서 출토되는 것보다 훨씬 화려하다. 그러나 백제에서 박산로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중간 단계의 것들이 출토되지 않고 있고 중국에서 다른 사치품들이 들어온 사례가 많기 때문에, 백제의 박산로도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백제 박산로의 제작 시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무령왕릉이 축조되었는데, 이 무령왕릉이 중국 남조의 사람들이 건너와 축조한 정황이 있기 때문에 그런 추정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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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산리 고분군
29호분은 석실 구조지만 바닥과 관대에 벽돌을 사용하였다. 造此是建業人也(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란 문구가 새겨진 벽돌이 있어 중국 남조의 사람이 건너와 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호분 벽돌에는 梁宣以爲師矣(양나라 사람인 宣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어 중국 남조의 양나라 사람이 건너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7호분은 6호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역시 중국 남조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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