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③
高麗使人來告曰 事有當議者 曷懶甸官屬使斜勒詳穩 冶剌保詳穩往 石適歡亦使盃魯往 高麗執冶剌保等 而遣盃魯曰 無與爾事 於是 五水之民皆附於高麗 團練使陷者十四人 고려에서 사람이 와 의논해야 할 일이 있다고 통고하니 갈라전에서 관속인 사혁상은, 야랄보상은 등을 보내자 석적환도 배노를 보냈다. 고려는 야랄보 등은 잡아두고 배노는 돌려보냈다. 이때 5수의 백성들이 모두 고려에 귀부하고 붙잡힌 단련사가 14명이었다.
http://qindex.info/i.php?x=30253
 008 ①
二年甲申 高麗來攻 石適歡大破之 殺獲甚眾 追入其境 焚略其戍守而還 1104년에 고려가 쳐들어오자 석적환이 크게 쳐부수어 죽이고 노획한 것이 매우 많았으며 고려 국경까지 추격하여 들어가 진지를 불살라 버리고 돌아왔다.
http://qindex.info/i.php?x=30608
 008 ②
四月 高麗復來攻 石適歡以五百人禦於闢登水 復大破之 追入闢登水 逐其殘眾踰境 4월에 고려가 다시 쳐들어오자 석적환이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벽등수에서 방어하여 크게 쳐부수고 추격하여 벽등수로 들어가 패잔병들을 국경너머로 쫓아버렸다.
http://qindex.info/i.php?x=30607
 008 ③
於是 高麗王曰 告邊釁者皆官屬祥丹 傍都里 昔畢罕輩也 十四團練 六路使人在高麗者 皆歸之 遣使來請和 이에 고려왕은 “국경의 분쟁을 충동질한 자는 모두 官屬 祥丹·傍都里·昔畢罕 무리들이었다.” 고 하며 단련사 14명과 6로의 사자로서 고려에 있던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는 동시에 사신을 보내와 강화하자고 요청하였다.
http://qindex.info/i.php?x=30609
 008 ④
遂使斜葛經正疆界 至乙離骨水 曷懶甸活禰水 留之兩月 斜葛不能聽訟 每一事輒至枝蔓 民頗苦之 마침내 사갈로 하여금 국경을 바르게 정하도록 하니 을리골수와 갈라전 활녜수에 이르러 2개월을 머물렀다. 사갈은 송사를 잘 판결하지 못하여 사건마다 지체시키니 백성들이 매우 괴롭게 여겼다.
http://qindex.info/i.php?x=30255
 008 ⑤
康宗召斜葛還 而遣石適歡往 石適歡立幕府于三潺水 其嘗陰與高麗往來為亂階者 即正其罪 餘無所問 康宗以為能 그래서 강종은 사갈을 소환하고 석적환을 파견하였다. 석적환은 삼존수에다 막부를 설치하고 과거에 고려와 몰래 왕래하여 난리를 조성한 사람은 즉시 죄에 따라 처벌하고 나머지는 불문에 부치니 강종은 그를 유능하게 여겼다.
http://qindex.info/i.php?x=30254
 009 ①
四年丙戌 高麗使使黑歡方石來賀嗣位 康宗使盃魯報聘 且尋前約 取亡命之民 1106년에 고려가 흑환방석을 사신으로 보내와 직위 계승을 축하하자 강종은 배노로 하여금 보빙하도록 하고 예전의 약속을 들어 망명한 백성들을 요구하였다.
http://qindex.info/i.php?x=23379
 009 ②
高麗許之 曰 使使至境上受之 康宗以為信然 使完顏部阿聒 烏林答部勝昆往境上受之 康宗畋於馬紀嶺乙隻村以待之 阿聒 勝昆至境上 高麗遣人殺之 而出兵曷懶甸 築九城 고려가 허락하면서 “국경에서 데려가라.”고 하니 강종은 완안부 아괄, 오림답부 승곤 등에게 데려오게 하고 마기령 을집촌에서 사냥하면서 기다렸다. 아괄, 승곤 등이 국경에 이르자 고려는 그들을 살해하고 갈라전으로 출병시켜 9성을 쌓았다.
http://qindex.info/i.php?x=30610
 010 ①
康宗歸 眾咸曰 不可舉兵也 恐遼人將以罪我 太祖獨曰 若不舉兵 豈止失曷懶甸 諸部皆非吾有也 康宗以為然 乃使斡塞將兵伐之 大破高麗兵 六月 高麗率眾來戰 斡塞敗之 進圍其城
http://qindex.info/i.php?x=30611
 010 ①
강종이 돌아오자 모두가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합니다. 요나라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를 탓할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나 태조만이 홀로 “만약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찌 갈라전만 잃어버리겠는가? 여러 부가 모두 우리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강종도 그렇게 여기고 마침내 알새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도록 하여 고려군을 크게 쳐부수었다. 6월에 고려가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 도전하자 알새가 패전시키고 진격하여 그 성을 포위하였다.
http://qindex.info/i.php?x=23346
 010 ②
七月 高麗復請和 康宗曰 事若酌中 則與之和 高麗許歸亡入之民 罷九城之戍 復所侵故地 遂與之和 7월에 고려가 화친을 요청하면서 전후에 망명한 자들과 침략한 옛 땅을 모두 돌려주고 9성 방어에서 퇴각함으로써 드디어 고려와 화친하였다.
http://qindex.info/i.php?x=3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