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5 07 三國志(289)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환제(146~167)·영제(168~189) 말기에는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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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08 三國志(289)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為帶方郡 遣公孫模 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0196~0220년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장창 등을 파견하여 한나라의 유민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과 예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와 한은 드디어 대방에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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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09 三國志(289)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 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0237~0239년에 명제가 몰래 대방군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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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10 三國志(289)
其俗好衣幘 下戶詣郡朝謁 皆假衣幘 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 풍속은 의책을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들도 군에 가서 조알할 적에는 모두 의책를 빌려 입으며 자신의 인수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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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誤記」 三國志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馬韓八國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 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 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 二郡遂滅韓 ▐ 馬韓에 대한 설명이므로 辰韓八國은 馬韓八國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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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誤記」 三國志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마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신지와 한인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이 때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준은 전사하였으나 2군은 마침내 한을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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