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이덕일은 1차사료인 한서(82)에 險瀆이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되어 있다며 조선이 險瀆이 있는 요하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한서가 편찬되고 100여년이 지난 후에 응소가 붙인 주석이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도읍이었던 王險에 朝鮮縣을 설치하면서 王險이란 지명이 사라졌기 때문에 도읍의 지명이 사라지는 것을 생각못한 응소가 險瀆을 王險으로 착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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