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5.05 高麗史(1451)
왕이 시일을 끌며 군사를 일으키지 않자 韓國華가 위협과 덕행으로 달랬다. 왕이 비로소 군사를 일으켜 서쪽에서 만나기를 허락하자 한국화가 이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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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85.05 高麗史(1451)
이보다 앞서 契丹이 女眞을 칠 때 우리 영토를 길로 삼았는데 여진은 宋에 말을 바치러 가서는 “고려가 거란과 더불어 우리 백성을 노략질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한국화가 왔을 때 이를 해명하였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황제의 총애를 크게 받아들고 있으니 감히 두 마음을 가지고 외국과 교통하겠소? 거란은 遼海 바깥쪽에 끼어 있으며 또 우리와는 큰 강을 두 개 사이에 둘 정도로 험해 따를 만한 길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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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85.05 高麗史(1451)
▐ 거란이 쳐들어온다고 여진이 알려주었지만 고려는 이를 무시했으며 진짜 거란이 쳐들어와 여진 사람들을 잡아갈 때 고려로 도망간 사람들까지 쫓아가 잡아갔는데 고려는 이를 방치하였다. 이에 여진이 불만을 품고 고려를 공격하자 그들을 잡아 노예로 삼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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