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5 高麗史節要(1452)
세자 대광현 등이 그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전후로 도망쳐 온 자들이 수만호였다. 왕이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여, 대광현에게 王繼라는 성과 이름을 내려주면서 그를 왕실의 적에 붙이고, 제사를 받들도록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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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25 고려사절요(1452)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이었다. 당(唐) 측천무후 때에 고구려 사람인 대조영이 요동으로 달아나 점유하였다. 당 예종이 발해군왕으로 봉하니 이로 인하여 스스로를 발해국이라 부르고 부여·숙신 등 10여 나라를 병합하였다. 거란의 군주가 크게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을 포위한 채 멸망시키고 동단국(東丹國)으로 바꾸었다. 그 세자 대광현과 ... 등 그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전후로 도망쳐 온 자들이 수만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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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25 고려사절요(1452)
세자 대광현과 장군 신덕·예부경 대화균·균로사정 대원균·공부경 대복모·좌우위장군 대심리·소장 모두간·검교 개국남 박어·공부경 오흥 등 그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전후로 도망쳐 온 자들이 수만호였다. 왕이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여, 대광현에게 ‘왕계’라는 성과 이름을 내려주면서 그를 왕실의 적에 붙이고, 제사를 받들도록 허락하였다. 보좌하는 신료들에게도 모두 작위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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