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 송사(1345)
초에 글단(契丹)의 아보기가 부여성을 침공하여 함락시킨 다음에 부여를 고쳐 동단부(東丹府)로 삼고서 그의 아들 돌욕에게 명하여 병사를 주둔시켜 진압하도록 하였다. 아보기가 죽자 발해왕이 다시 부여를 침공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 이 기록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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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0.0935 송사(1345)
발해는 장흥(930~933)·청태(934~935)까지 당(五代唐)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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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54~0959 宋史(1345)
954~959년 초에 발해의 추장 최오사 등 30여명이 와 귀부하였다. 그 뒤로는 단절되어 중국과 왕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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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79 宋史(1345)
979년에 태종이 晉陽을 평정하고 幽州로 병사를 이동시키니 渤海의 추장 大鸞河가 소교 이훈 등 16명과 부족 3백 기병들을 거느리고 항복해 오므로 鸞河를 발해도지휘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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