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직공도(526-539 梁職貢圖)
百濟舊來夷馬韓之屬晉末駒麗畧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백제는 옛날 흘러온 오랑캐로 마한에 속했는데, 진나라 말기에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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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직공도(526-539 梁職貢圖)
▶송서(488)에 비해 진(西晉 265~317 東晉 317~420) 말기라는 구체적인 시기가 더해졌다. ▶이 기록은 고려가 요동과 낙랑을 차지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양서(636)의 기록과 비교해보면 낙랑을 백제의 오기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 ○ 駒麗┆畧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 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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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6.0539 梁職貢圖 百濟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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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6.539 梁職貢圖
백제 주변에는 소국이 있는데 반파·卓·다라·전라·사라·지미·마련·상기문·하침라 등이 백제에 부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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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6~0539 梁職貢圖
백제 주변에는 소국이 있는데 반파·탁·多羅·전라·사라·지미·마련·상기문·하침라 등이 백제에 부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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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6~0539 梁職貢圖
백제 주변에는 소국이 있는데 叛波·탁·다라·전라·사라·지미·마련·상기문·하침라 등이 백제에 부용하였다. ▐ 일본서기(720) 외에 반파가 등장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시기적으로 기문 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때이고, 백제 사신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록했을 것으로 보여, 역시 백제의 기록을 광범위하게 참고한 일본서기의 반파에 관한 기록과 맥락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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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7 梁 職貢圖 摹本 - 百濟국사 1
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畧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自晉已來常修蕃貢 백제는 옛날 흘러온 오랑캐로 마한에 속했는데, 진(西晉 265-317 東晉 317-420) 말기에 고려가 요동과 낙랑을 공략하니 (백제도) 요서의 진평현을 차지했다. 진나라 이래로 항상 번공을 닦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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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7 梁 職貢圖 摹本 - 百濟국사 2
義熙中其王餘腆宋元嘉中其王餘毗齊永明中其王餘太皆受中國官爵梁初以太爲征東將軍尋爲高句驪所破普通二年其王餘隆遣使奉表云累破高麗 의희(405~418) 연간에 왕 여전(餘腆)이, 원희(424~453) 연간에 왕 여비(餘毗)가, 영명(483~493) 연간에 왕 여태(餘太)가 모두 중국의 관작을 받았다. 양나라 초에 태위정동장군이 고구려에 패했다. 보통2년(521)에 왕 여륭(餘隆)이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리고 고려를 격파했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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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7 梁 職貢圖 摹本 - 百濟국사 3
所治城曰固麻謂邑曰檐魯如中國郡縣有二十二檐魯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叛波卓多羅前羅斯羅止迷麻連上己文下枕羅等附之 다스리는 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담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처럼 22담로가 있다. 자제와 종친들에게 나눠주었다. 주변에는 소국이 있는데 반파·탁·다라·전라·사라·지미·마련·상기문·하탐라 등이 부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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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7 梁 職貢圖 摹本 - 百濟국사 4
言語衣服畧同高麗行不張拱拜不申足以帽爲冠襦曰複衫袴曰褌其言參諸夏亦秦韓之遺俗 언어와 의복은 고려와 거의 같다. 다닐 때에는 두 손을 맞잡지 않고 절을 할 때에는 다리를 펴지 않는다. 두건를 관(冠)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複衫), 바지를 곤(褌)이라 한다. 그 말에는 중국(夏)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과 한(韓)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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