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部 任那와 百濟
백제 아신왕은 396년에 고려 광개토왕의 침공을 받아 항복하고 58성을 바쳤다. 그러자 이듬해에 왜가 사신을 보내어 忱彌多禮 및 峴南·支侵·谷那·東韓의 땅을 빼앗고 태자를 볼모로 데려갔다. 忱彌多禮는 제주도를 말하고 峴南은 차현 이남, 支侵과 谷那는 각각 지금의 임실과 谷城에 어울린다. 왜는 東韓과 峴南으로 추정되는 任那四縣을 각각 405년과 512년에 백제에게 주었다. 그렇다면 東韓은 차현 이북, 한성 동쪽 그리고 漢山州 내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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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2 四縣
▐ 실질적으로 백제는 그 전부터 임나4현과 比利 및 辟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듯하다. 490년과 495년에 남제에 올린 표문에서 동성왕은 공신들에게 阿錯王, 邁羅王, 辟中王 등의 작위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阿錯은 比利고 邁羅는 4현의 하나인 娑陀다. 여기에는 동성왕이 왜왕에 의해 앉혀진 백제왕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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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4※ 沙宅=砂宅=沙吒=娑陀=泗沘
▐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백제에는 沙씨가 등장하는데, 이 沙씨는 砂宅, 沙宅 또는 沙吒로도 나타난다. 砂宅智積碑는 泗沘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는 沙씨가 백제 왕조에 편입된 泗沘 지방의 토착 세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泗沘는 일본서기(720)에서 임나4현의 하나로 나오는 娑陀의 다른 표기일 가능성도 생긴다. 泗沘는 久麻那利에서 가깝고 久麻那利는 임나 4현의 하나인 下哆唎의 별읍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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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西部 任那와 百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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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읍과 4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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