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분쟁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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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 己汶 분쟁 직후
백제는 새로 획득한 4현과 상기문을 추가해서 영토를 22담로로 묶었다. 이때의 영토는 훗날의 신라 웅주와 전주를 합한 것과 같다. 영산 지역은 신라 무주에 해당되는데 이때까지는 백제의 영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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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 己汶 분쟁 직후
백제는 새로 획득한 4현과 상기문을 추가해서 영토를 22담로로 묶었다. 이때의 영토는 훗날의 신라 웅주와 전주를 합한 것과 같다. 영산 지역은 신라 무주에 해당되는데 이때까지는 백제의 영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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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 @담로 @남한 @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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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 기문분쟁 직후
475년에 고려에게 한성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으로 내려와 조금씩 재기하고 있었다. 512년에 왜로부터 임나 4현을 얻었고 역시 왜의 지원을 받아 가라로부터 기문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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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 기문분쟁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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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6_ 己汶분쟁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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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2◾下韓(南韓)
웅진으로 쫓겨온 백제는 512년에 왜로부터 오늘날의 부여, 대전, 논산 그리고 청주에 해당되는 4현을 얻는다. 훗날의 웅천주다. 이어서 516년에는 가라로부터 오늘날의 남원에 해당되는 기문을 뺐는데, 22담로는 이때 만들어진 듯하다. 훗날의 웅천주와 완산주를 합친 것이다. 백제는 또 522년에 가라로부터 오늘날의 하동에 해당되는 나루도 빼앗는다. 이때 조공 나루를 핑계댄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훗날 무진주가 되는 영산강 유역은 차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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