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라와 왕씨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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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0~0873 新唐書(1060) 20
▐ 발해의 조공길은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 황해로 들어간 뒤 해안을 따라 간 듯하다. 당나라에서 보자면 그들이 발해를 통해 들어와 조공을 바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당나라가 대조영에게 발해군왕의 벼슬을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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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1 왕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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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6 골암은 흑수와 접하는 곳이었다
○ 궁예에게서 떨어져나간 윤선은 2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골암성에 주둔하며 흑수번의 무리를 불러 궁예의 변방 군들에 해를 끼치다 918년에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 920년 골암진이 북적의 침략을 당하자 왕건은 유금필로 하여금 개정군 3천 명을 이끌고 가게 하였다. 유금필은 동산에 큰 성을 쌓고 북번의 추장 300명을 초대하여 복종을 받아냈다. ○ 936년 왕건은 유금필에게 흑수·달고·철륵 등 변방의 정예 기병 9천 5백 명을 지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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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70※ 渤海 朝貢道
▐ 발해의 鴨湪은 조공길이었고 長嶺은 영주길이었으며 扶餘는 거란길이었다. 정안국 이야기에 나오는 여진도 발해의 길을 이용했다면 정안국의 위치도 압록강 중류 지역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곳은 맥고려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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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 강동6주 획득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있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후방의 주민들을 사민시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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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5 등주는 흑수를 막는 곳이었다
○ 921년에 달고적 171명이 신라를 침공하러 가다 등주에서 견권에게 패해 말 한 필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 1005년에 동여진이 등주를 침략하여 주진의 부락 30여 곳을 불태우자 장수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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