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3 高麗史(1451)
唐에서 왕경과 양소업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조서를 내렸다.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왕건은) 주몽의 상서로운 개국을 뒤쫓아 나라의 군주가 되고 기자가 번국을 이룩한 자취를 밟아서 자애와 상서를 펼치고 있다." ▐ 후당의 조서는 고려계승을 내세운 왕씨왕조가 듣고 싶어하는 말로 채워져 있다. 주몽은 맥고려의 시조다. 기자는 낙랑이 숭배하던 조선의 시조인데, 낙랑고려가 이었던 것을 왕씨고려가 또 계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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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3 高麗史(1451)
(왕건이 후당으로부터 받은 조서)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주몽의 계토지정을 따라 군장이 되었고 기자의 작번지적을 밟아 사랑과 평화를 펼쳤다. ▐ 왕조가 신라에서 왕씨고려로 바뀌며 국조도 고려의 국조였던 朱蒙으로 바뀌었다. 이때 箕子도 국조로 숭배되었는데, 이는 고려의 箕子숭배를 계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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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3 高麗史(1451)
唐에서 왕경과 양소업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왕건은) 주몽의 상서로운 개국을 뒤쫓아 나라의 군주가 되고 기자가 번국을 이룩한 자취를 밟아서 자애와 상서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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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3 高麗史(1451)
(왕건이 후당으로부터 받은 조서)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주몽의 계토지정을 따라 군장이 되었고 기자의 작번지적을 밟아 사랑과 평화를 펼쳤다. ▐ 주몽과 기자 이야기는 왕건이 보낸 사신이 소개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계승을 내세우면서도 굳이 기자 이야기를 한 이유는 왕건이 낙랑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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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高麗史 053
▐ 왕건이 唐나라 황제의 후손을 자처한 것은 왕건이 後唐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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