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강목(1778)
중국 사람들이 항상 부여와 백제를 혼동해 일컫기 때문에 남사에는 “진나라 때 구려가 요동을 점유하고 백제 또한 요서의 진ㆍ평 두 고을을 점거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문된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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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6 동사강목(1778)
자치통감 진목제 영화 2년에는, “처음에 부여가 녹산에 있다가 백제(구려의 오류인 듯하다)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소산해지므로 서쪽으로 옮겨 연(燕)에 근접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문된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1877
 0346 동사강목(1778)
자치통감 진목제 영화 2년에는, “처음에 부여가 녹산에 있다가 백제(구려의 오류인 듯하다)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소산해지므로 서쪽으로 옮겨 연(燕)에 근접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문된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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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6 동사강목(1778)
▶양직공도(526-539)는 백제를 마한에 속한다고 하였고(百濟舊來夷馬韓之屬) 최치원은 900년 이전에 당나라에 가서 마한은 고려가 되었다고 했다(馬韓則髙麗). 원래 고려라 기록된 것을 최치원 식의 인식에 의해 마한으로 바꿔 기록했다가, 다시 양직공도 식의 인식에 의해 백제로 바꿔 기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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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6 동사강목(1778)
▶양직공도(526-539)는 백제를 마한에 속한다고 하였고(百濟舊來夷馬韓之屬) 최치원은 900년 이전에 당나라에 가서 마한은 고려가 되었다고 했다(馬韓則髙麗). 원래 고려라 기록된 것을 최치원 식의 인식에 의해 마한으로 바꿔 기록했다가, 다시 양직공도 식의 인식에 의해 백제로 바꿔 기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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