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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945) 01
靺鞨은 곧 肅愼의 땅이니, 後魏때에는 이를 勿吉이라 하였다. 京師에서 동북으로 6천여리 밖에 있다.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突厥과 접하며, 남쪽은 高麗와 경계하고, 북쪽은 室韋와 인접해 있다.
그 나라는 모두 수십 부나 되는데, 각각 추사가 있어 더러는 高麗에 부용되어 있고, 더러는 突厥에 신속되어 있다. 그런데 黑水靺鞨이 가장 북방에 있으면서 제일 강성하여 늘 그 용맹을 과시하므로 항상 이웃 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4702#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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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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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945) 02
풍속은 모두 머리를 땋는다. 성격이 사나워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며, 젊은 자는 귀하게 여기고 늙은 자는 천시한다. 집이 없고 모두 산간이나 물가에 의지하여 움을 파고 그 위에 나무를 걸쳐서 흙으로 덮는데, 모양은 마치 중국의 무덤과 같으며, 한곳에 모여서 산다. 여름에는 수초를 따라 나오고, 겨울에는 움 속으로 들어가 산다.
4702#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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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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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945) 03
부자가 대를 이어 군장을 세습한다. 습속에 문자가 없다. 병기로는 각궁 및 楛矢가 있다. 가축은 돼지가 많아 부유한 집은 수백마리가 되며, 그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지어 입는다.
죽은 자는 땅을 파고 묻는데, 시신을 그대로 흙에 묻으므로 棺斂의 도구가 없으며, 그가 타던 말을 잡아서 주검 앞에 놓고 제사한다.
4702#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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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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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945) 07
664~665년에 營州도독으로 옮겼다. 그 부락의 家僮이 수천이나 되고 재력이 변방에서 가장 좋아 오랑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여러번의 승진으로 우령군대장군에 배제되고 적석도경략대사가 되었다. 吐蕃의 論欽陵 등이 무리 십만명을 거느리고 湟中에 침입하였을 적에는 근행의 병사는 땔나무를 모으고 있어 전혀 방비를 하지 않았으나 적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깃발을 꽂고 북을 울리며 성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吐蕃이 복병을 의심하여 진입하지 못하였다.
4702#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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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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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945) 10
그 가운데 白山部는 본래 高麗에 부용되었는데 平壤이 함락된 뒤에 많은 무리들이 중국으로 들어 왔다. 汨咄·安居骨· 號室 등의 부족도 高麗가 함락된 뒤로는 뿔뿔이 흩어지고 미약하여져 뒤에는 알려지지 않고 더러는 유민과 함께 渤海에 편입되었다. 오직 黑水部만이 강성하여 16부로 나누고 또 남부와 북부로 구분하여 일컬었다.
4702#1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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