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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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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 ~ -0108 朝鮮
-283년에 燕의 침공을 받아 복속되었다가 -206년에 중국을 통일한 漢의 영토에서는 빠졌다. -195±년에 燕의 衛滿이 와서 왕조를 세웠으나 漢의 침공을 받아 -108년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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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漢
漢의 劉邦은 秦이 망한 뒤 楚의 항우와 경쟁해서 이기고 서기전 206년에 다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인을 가리키는 漢族이라는 말은 이 漢에서 비롯되었다.
4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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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 箕子
箕子는 상나라가 주나라에 망하던 시기(-1046)의 인물이다.
논어(-479)에는 단순히 상나라 주왕이 箕子를 가두었다고만 되어 있는데 상서대전(-157-)에는 주나라 무왕이 그를 풀어주자 조선으로 달아나므로 조선을 봉지로 인정해 주니 조공을 왔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서(82)에는 箕子가 조선에서 예의를 가르쳐 8조범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위략(265±)에는 조선왕이 箕子의 후손인데 위만에게 쫓겨나 韓王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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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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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六村
閼川 楊山村 ┆ 突山 高墟村 ┆ 觜山 珍支村(干珍村) ┆ 茂山 大樹村 ┆ 金山 加利村 ┆ 明活山 高耶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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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0668 高麗都
-037 紇升骨城 ➔ 003 國內 ➔ 209 丸都 ➔ 247 平壤城 ➔ 342 丸都城 ➔ 343 平壤東黄城 ➔ 371 國內 ➔ 427 平壤 ➔ 586 長安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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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0023 新
전한의 왕망은 고모인 효원 황후의 비호 아래 성장하다 서기 8년에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전국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서기 23년에는 왕망도 살해되었다. 이때는 유현이 반란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있던 상태였다.
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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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 高句麗
압록강 유역에는 貊이 있었다. 위만 조선에 복속되어 있다가 한나라가 -108년에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4군을 설치할 때 현도군 高句麗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점차 한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高句麗현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5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처음에는 소노부에서 왕을 배출하다 鄒牟부터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독점하였다. 나라 이름은 高句麗현의 이름을 따 高句麗라 불리게 되었다.
8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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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0220 後漢
전한이 왕망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한 왕조의 일족인 광무제 유수가 왕조를 부흥시켰다. 수도를 낙양에 두었는데 그 위치가 전한의 수도 장안보다 동쪽에 있기에 東漢이라고도 한다.
7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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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0265 曹魏
魏의 曹丕는 漢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았는데, 이후 蜀 및 吳와 다툼을 벌였다.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蜀과 吳는 각각 264년과 280년에 魏와 晉에게 망했다.
40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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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훗날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 건너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19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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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東夷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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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馬韓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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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弁辰
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冉奚國┆弁辰半路國┆弁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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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370 ➔前燕→後燕→北燕
요서 일대에 살던 慕容선비는 307년 慕容廆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鄴으로 옮겼다. 370년 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14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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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1~0394 前秦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저족은 오호십육국시대 초기에는 포홍을 지도자로 하여 前趙 및 後趙의 용병으로 각지를 전전하였다. 특히 후조에 의해 하북성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포홍의 아들 부건이 장안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351년에 전진을 건국하였다.
2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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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 任那
369년에 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고 比自㶱, 南加羅, 㖨國, 安羅, 多羅, 卓淳 그리고 加羅를 복속시킨 뒤 서쪽으로 돌아 忱彌多禮를 치자 比利, 辟中, 布彌支 그리고 半古가 항복해 왔다. 왜는 점령 지역을 백제와 나눠 가졌다가 392년에는 백제왕을 교체하면서 대부분을 빼앗았다.
이후 백제에게 영토를 조금씩 돌려주고 신라에게는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562년에 加羅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모두 잃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任那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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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古奚津┆忱彌多禮
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29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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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0436 前燕→後燕➔北燕
후연에서 풍발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모용희를 죽이고 이전 황제의 양자였던 고운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2년 뒤 고운이 살해되자 풍발이 난을 수습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풍발이 죽자 풍발의 동생 풍홍이 풍발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침공을 받아 북연은 망하고 풍홍은 고려로 망명했다가 살해되었다.
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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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4 北魏➔東魏+西魏
北魏의 효무제는 高歡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자 낙양에서 장안으로 도피하여 宇文泰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자 고환은 鄴에서 효정제를 옹립하였다. 한편 우문태는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하였다.
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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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0~0577 東魏➔北齊
547년에 東魏의 실권자 高歡이 죽자 그의 맏아들 高澄이 권력을 계승하였는데 549년에 살해되었다. 그러자 고환의 차남 高洋이 난을 수습하고 황제가 되어 北齊를 세웠다.
577년에 北周에게 망했다.
23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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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 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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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0907 唐
唐은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는 역시 신라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신라마저 병합하려던 시도는 실패하여 한국에서 물러났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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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臨渝 ┆ 697 盧龍 石城 ┆ 740 盧龍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2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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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6 ☴ 新羅
新羅는 562년에 가라를 병합하고 백여년 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를 각각 660년과 668년에 멸망시킨 뒤, 676년에는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임진강 이남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로써 갈래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통치체제에 담기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漢나라때 漢族이 형성되었듯 新羅라는 그릇에 담겨 생겨난 민족이니 新羅民族이라 부를 만하다.
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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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0~1279 趙宋
趙宋은 960년에 세워져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1127년에 金의 침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金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황제의 동생이 남중국으로 도망가 왕조를 계속 이었다.
1279년에 元에게 병합되었다.
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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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4~1084
0974 舊五代史(薛居正 等)┆1013 冊府元龜(王欽若 楊億 等)┆1053 新五代史(歐陽修)┆1060 新唐書(歐陽修 宋祁)┆1084 資治通鑑(司馬光)
23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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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東北九城
孔州 ┆ 雄州→海洋┆火串山┆火串嶺 ┆ 弓漢村→吉州¹┆弓漢嶺 ┆ 公嶮鎭→吉州² ┆ 曷懶→吉州¹ ┆ 吳林金村→福州→禿魯兀 ┆ 磨雲嶺 ┆ 乙離骨 ┆ 英州→三撒(參散)┆蒙羅骨嶺 ┆ 合懶→咸州→合蘭 ┆ 宣德鎭 ┆ 巴只→定州 ┆ 長州 ┆ 和州→雙城 ┆ 高州 ┆ 文州 ┆ 宜州 ┆ 平戎 ┆ 登州 ┆ 通泰 ┆ 鐵嶺 ┆ 영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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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234 金
아골타가 말갈 부족들을 통합한 후 세웠다. 1125년에 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했다.
4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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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 壇君
燕나라의 衛滿은 -195+년에 조선으로 건너와 평양에서 왕조를 세웠다. 다른 고대 왕조처럼 衛滿 왕조 또한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08년에 한나라가 衛滿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하면서 통치에 권위를 부여하는 설화는 箕子 설화로 대체되었다.
이후 衛滿 설화는 지하로 들어가 무속신앙, 도교, 불교, 箕子 설화, 퉁구스 설화, 일본 설화 등과 결합하여 풍부한 이야기로 발전하였고 천여년이 지난 후에는 壇君 설화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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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1644 明
明은 남중국에서 세워진 왕조로 元을 몽골로 몰아내고 북중국까지 차지하였다. 1616년에 요동에서 後金이 세워지자 明은 1619년에 이조의 지원군과 함께 後金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다.
淸은 明의 마지막 황제가 1644년에 자살하자 북경을 점령하고 이어 중국을 차지하였다.
27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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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1912 淸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에 後金을 세웠다.
이후 後金은 국호를 淸으로 바꾸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후 중국대륙마저 정복하였다.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이듬해에 왕조가 해체되었다.
4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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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米軍
新羅民族의 형성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민족이 분단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군이 주둔한 적도 없었다.
동북공정처럼, 미군주둔과 이로 인한 외교적 경제적 예속을 정당화하는 주장은 지금 없는가?
米軍을 철수시키지 않고는 민족 통일은 커녕 민족 공존도 불가능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시대적 과제는 자주화가 되어야 한다.
2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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