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0. 들어가는 말
삼각산 비봉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사람들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비석을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희에 의해 글귀가 해독되고 나서는, 400여 년 전에 있었던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이 아니라 1200년도 더 된 신라진흥왕의 순수비로 밝혀진다. 이처럼 우리가 예로부터 전해들은 역사 이야기 중에는 왜곡되거나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는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착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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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국 및 서일본과 가까운 한국인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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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모든 민족은 조상이 같다. 그러나 무리들 사이에 이질감이 커지며 여러 민족으로 갈라졌다. 한편, 별개의 민족이 합쳐져 하나의 민족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민족의 기원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최초로 만나게 되는 분기 또는 통합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조인과 왕고인을 거쳐 신라인에 이른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인, 가라인, 예인, 고려인 등으로 갈라진다. 따라서 한민족의 기원은 신라의 한국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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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설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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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씨고려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씨조선은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단군설화는 왕고때 여러 가지 역사 기록과 설화가 섞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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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복강 동조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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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한국의 영산강 유역과 일본의 복강현은 동일한 고고학적 양상을 띤다. 또 왜의 설화에는 신라가 등장하고 가라의 설화와 닮은 부분도 있다. 신라의 한국통일 이전에는 신라나 백제가 고려와 왜를 달리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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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한국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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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任那史
임나의 역사는,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함께 삼한의 7국과 4읍을 점령한 때로부터 시작해서, 신라에 병합되어 사라지기까지 170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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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벽화의 고려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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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고려는 맥(貊)의 다섯 부족 연맹체에서 출발하여 예, 옥저, 부여, 낙랑 그리고 대방을 통합하면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중국과는 요하를 경계로 맞서고 한국과는 한강 유역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다. 고려는 초기의 맥고려와 후기의 낙랑고려로 그 시기를 나눌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한국과 별개로 인식하다 삼한의 한 부분이던 임나가 멸망한 뒤에는 고려를 삼한의 하나로 인식하였다. 고려가 망한 뒤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모두 발해의 영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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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망한 뒤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발해의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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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나?
한반도에서는 660년부터 676년까지의 시기에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唐)과 신라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 왕조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당과 신라 사이에도 전쟁이 벌어져 당이 한반도에서 물러가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당이 물러간 676년의 상황을 보면, 신라의 북쪽 경계는 고려가 존재할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대동강 이남의 낙랑과 대방이 신라의 땅이 된 것은 735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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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고려는 고려가 아니라 신라의 후속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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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왕씨고려는 신라의 영토와 백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왕조만 바뀐 것이다. 고려의 영토와 백성 대부분은 발해로 흡수되었고 그래서 발해는 고려계승국을 자처하였다. 왕씨고려는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고려를 한국사에 끼워넣었는데, 이때부터 민족 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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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와 흑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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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遼黑史
문화권 또는 역사공동체는 대체로 강의 유역과 일치한다. 이는 인류의 문명이 농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 농경은 강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하 유역과 흑수 유역은 역사가 서로 얽혀 있어 별개의 역사공동체로 분리하기 어렵다. 요하 유역과 황하 유역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요하 유역과 흑수 유역을 하나로 묶어 요흑사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동서로는 몽골에서 연해주까지고 남북으로는 흑룡강에서 장백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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