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漢나라는 衛滿朝鮮 병합과 漢사군 설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箕子동래설을 부풀렸다. 이어서 반도의 중남부 지역마저 차지하려고 韓王 이야기를 날조해 내서 옛 眞番 지역을 韓國이라 부르고 辰國도 이 韓國에 넣어 辰韓이라 불렀다. 辰韓에서 나온 新羅는 옛 眞番 지역과 濊를 통합하였는데, 이때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다. 新羅 왕조를 교체한 王氏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高麗를 韓國史에 끼워넣고 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Military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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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箕子
箕子는 상나라가 주나라에 망하던 시기(-1046)의 인물이다. 논어(-479)에는 단순히 상나라 주왕이 箕子를 가두었다고만 되어 있는데 상서대전(-157-)에는 주나라 무왕이 그를 풀어주자 조선으로 달아나므로 조선을 봉지로 인정해 주니 조공을 왔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서(82)에는 箕子가 조선에서 예의를 가르쳐 8조범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위략(265±)에는 조선왕이 箕子의 후손인데 위만에게 쫓겨나 韓王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1727#1939 COMMENT
 
0012 高句麗
압록강 유역에는 貊이 있었다. 위만 조선에 복속되어 있다가 한나라가 -108년에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4군을 설치할 때 현도군 高句麗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점차 한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高句麗현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5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처음에는 소노부에서 왕을 배출하다 鄒牟부터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독점하였다. 나라 이름은 高句麗현의 이름을 따 高句麗라 불리게 되었다.
1727#15093 COMMENT
 
0245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훗날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를 거쳐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1727#5802 COMMENT
 
0369 任那
369년에 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고 比自㶱, 南加羅, 㖨國, 安羅, 多羅, 卓淳 그리고 加羅를 복속시킨 뒤 서쪽으로 돌아 忱彌多禮를 치자 比利, 辟中, 布彌支 그리고 半古가 항복해 왔다. 왜는 점령 지역을 백제와 나눠 가졌다가 392년에는 백제왕을 교체하면서 대부분 빼앗았다. 이후 백제에게 영토를 조금씩 돌려주고 신라에게는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562년에 加羅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모두 잃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任那의 유산이다.
1727#5999 COMMENT
 
0676 新羅
新羅는 562년에 가라를 병합하고 백여년 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를 각각 660년과 668년에 멸망시킨 뒤, 676년에는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임진강 이남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로써 갈래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통치체제에 담기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漢나라때 漢族이 형성되었듯 新羅라는 그릇에 담겨 생겨난 민족이니 新羅民族이라 부를 만하다.
1727#1718 COMMENT
 
1281 壇君
燕나라의 衛滿은 -195+년에 조선으로 건너와 평양에서 왕조를 세웠다. 다른 고대 왕조처럼 衛滿 왕조 또한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08년에 한나라가 衛滿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하면서 통치에 권위를 부여하는 설화는 箕子 설화로 대체되었다. 이후 衛滿 설화는 지하로 들어가 무속신앙, 도교, 불교, 箕子 설화, 퉁구스 설화, 일본 설화 등과 결합하여 풍부한 이야기로 발전하였고 천여년이 지난 후에는 壇君 설화가 되어 있었다.
1727#2492 COMMENT
 
1945 米軍
新羅民族의 형성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민족이 분단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군이 주둔한 적도 없었다. 동북공정처럼, 미군주둔과 이로 인한 외교적 경제적 예속을 정당화하는 주장은 지금 없는가? 米軍을 철수시키지 않고는 민족 통일은 커녕 민족 공존도 불가능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시대적 과제는 자주화가 되어야 한다.
1727#1042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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