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245 韓 > 韓의 변천

韓은 삼국지(289)에 처음 나타날 때 반도 중남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한에는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이 있었고 이 셋을 통틀어 三韓이라 불렀다. 이 삼한은 韓國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해체되자 한국은 거기에서 나온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되었다. 한편, 삼한은 삼한의 한 축이던 임나가 신라에 병합되자 점차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0245? 三國志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환제(146-167)·영제(168-189) 말기에는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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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三國志
경초 연간에 명제가 몰래 대방군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韓國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韓國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辰韓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신지와 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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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韓¹
한(韓¹)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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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韓國¹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나라의 고역을 피하여 한국(韓國¹)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 진나라 시기에는 한국이 없었고 사기(-91)에 진나라 유민이 조선으로 왔다는 기록과 한나라 유민이 진번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여기에 나오는 마한과 진한은 각각 진번과 진국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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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韓國₁
從郡至倭循海岸水行曆韓國₁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¹七千餘里 (대방)군을 떠나 왜에 가려면 해안을 따라 한국₁을 지나 남쪽으로 간 뒤 다시 동쪽으로 7천여 리를 가면 북쪽 해안에 구야한국¹이 있다. ▐ 삼한을 설명할 때는 弁辰狗邪國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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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280~0290 진서(648)
마한과 진한의 조공 기록이다. 이후 마한과 진한은 중국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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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1
0291
서진은 316년에 망했지만 291~306년에 있었던 8왕의 난으로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쳐 낙랑과 대방이 망하고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은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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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 ❰❰ 0009 三國誤記
馬韓遂滅 마한이 마침내 멸망하였다. ▐ 원래는 9년의 기록이나 시대 정황과 맞지 않기 때문에 5주갑 300년을 뒤로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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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백제과 신라는 옛적부터 속민으로서 조공을 해왔다.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은 보이지 않고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가 최초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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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과 예인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 광개토왕은 한성백제를 정벌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고갔다. 당시 신라와는 동맹관계였으니 여기에 나오는 한인은 사실 백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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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0562
가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임나는 모두 없어졌다. 이후 삼한은 점차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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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三韓³
(백제 의자왕에게 보내는 당 고종의 조서) 해동의 세 나라는 개국한지 오래이며, 국토가 나란히 있어 실로 개의 이빨처럼 국경이 들쭉날쭉 서로 닿아 있소. 근래에 와서 드디어 국경을 다투고 침공을 하여 조금도 편안할 해가 없었소. 마침내 삼한의 백성(三韓³之氓)으로 하여금 목숨이 도마 위에 놓이게 하고, 창을 찾아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거듭되니, 짐이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 깊이 안타까워하는 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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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4 高牟 墓誌銘
族茂辰韓雄門譽偃傳芳穢陌聲高馬邑 가문은 진한에서 융성해 다른 명문의 명예를 모두 압도했고, 아름다운 명예가 예맥에 널리 전해져 명성은 도성인 마읍에서 드높았다. ▐ 다른 기록에 나오는 진한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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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고사기
此地者 向韓國眞來通 笠紗之御前而 朝日之直刺國 夕日之日照國也 故 此地甚吉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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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320 三韓³
이 때 고려와 백제의 두 나라 국왕이 신라가 도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여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내관가둔창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³)이다. 황후가 신라로부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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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396 韓人³
고려인, 백제인, 임나인 그리고 신라인이 함께 내조하였다. 이때 무내숙녜에게 명하여 여러 한인(韓人³)을 거느리고 연못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 연못을 한인지(韓人³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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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463 韓國₂
천황이 전협신의 아들 제군과 길비해부직적미에게 명하여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신라를 징벌하라”고 하였다. 이 때 서한 재기 환인지리가 옆에 있다가 나아가 “저희들보다 뛰어난 자가 한국(韓國₂)에 많이 있으니 불러서 부릴만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여러 신하들에게 “그러면 마땅히 환인지리를 제군 등에게 딸려 보내 백제 길을 취하고 아울러 칙서를 내려 재주가 뛰어난 자를 바치게 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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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530 韓國²
目頰子 初到任那時 在彼鄕家等 贈歌曰 柯羅屨儞嗚 以柯儞輔居等所 梅豆羅古枳馱樓 武哿左屨樓 以祇能和馱唎嗚 梅豆羅古枳馱樓 목협자가 처음 임나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 있는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가라구이(柯羅屨儞 からくに)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목협자는 왔는가. 저 멀리 일기로부터 목협자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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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530 韓國²
▐ からくに(韓国) 古く日本で朝鮮を呼んだ名。 ※古事記(712)上「此地は韓国(からくに)に向ひ、笠沙(かささ)の御前を真来(まき)通り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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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556 韓人₂
소아대신도목숙녜 등을 왜국의 고시군에 보내어 韓人₂대신협둔창(여기에서 韓人이란 백제를 이른다), 高麗人소신협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국에 해부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어떤 책에서는 '각지의 韓人₂을 대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高麗人을 소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韓人₂, 高麗人을 전부로 삼은 것을 가지고 둔창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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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0648 三韓³
삼한(三韓³, 고려·백제·신라를 이른다)에 학문승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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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320
“무내숙니는 항상 천하를 엿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축자에 있으면서 비밀리에 모의하여, ‘홀로 축자를 나누고 삼한(三韓)을 불러들여 나에게 조회하도록 한 다음 장차 천하를 지배하겠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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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390
처음 천황이 뱃속에 있을 때, 하늘과 땅의 신이 삼한(三韓)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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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433
오자롱은 한국(韓國₂)에 파견되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초료존은 어우에게 "네가 직접 한국(韓國₂)에 가서 오자롱을 불러 오너라.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가거라."라고 말하였다. 곧 담로의 해인 80명을 뽑아 수부로 삼았다. 이에 어우가 바로 한국(韓國₂)으로 가서 오자롱을 데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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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465
몸은 만 리 밖에서 수고로웠고 목숨이 삼한(三韓)에서 떨어졌으니, 매우 불쌍히 여겨 장례를 담당할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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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487
기생반숙녜가 임나를 점거하고 고려와 교통하였으며, 서쪽에서 장차 삼한(三韓)의 왕노릇하려고 관부를 정비하고 스스로 신성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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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537
천황은 신라가 임나를 침략하였으므로 大伴金村大連에게 명령하여 그 아들 磐과 狹手彦을 보내어 임나를 돕게 했다. 이 때 磐은 축자에 머물며 국정을 잡고 삼한(三韓)에 대비하고 있었다. 狹手彦은 가서 임나를 평정하고 또 백제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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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552
멀리 天竺으로부터 삼한(三韓)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에 따르고 받들어 지녀 존경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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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562
그의 아내 대엽자도 함께 잡혔는데 비통하게 노래하기를 “가라구이(柯羅俱爾 からくに)의 성 위에 서서 대엽자는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드네. 일본을 향해서.”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화답하기를 “가라구이(柯羅俱爾 からくに)의 성위에 서서 대엽자가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드는 것이 보이네. 난파를 향하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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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577
大別王과 小黑吉士를 보내어 백제국의 宰로 삼았다王의 신하로서 명을 받들어 삼한(三韓)에 사신으로 갈 때 스스로 宰라고 칭한다. 한(韓)의 宰가 된다고 하는 말은 대개 옛날의 典範인 듯하다. 지금은 使라고 하는데 나머지는 모두 이를 따른다. 大別王은 어디 출신인지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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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630
난파의 대군과 삼한관(三韓館)을 고치고 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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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645
倉山田麻呂臣이 나아가 삼한(三韓)의 표문을 낭독했다. ... 고인대형은 이 상황을 보고 자기 궁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한인(韓人)이 안작신을 죽였다(韓政으로 인해 주살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나의 마음은 비통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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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645
中大兄이 倉山田麻呂臣에게 몰래 이르기를 “三韓이 調를 바치는 날에 반드시 卿으로 하여금 그 표문을 낭독하도록 하겠다”고 하여 마침내 入鹿을 목베고자 하는 모의를 드러내 말하였다. 麻呂臣이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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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662
꽃과 열매가 있는 나무에서 얻는 토산물은 삼한(三韓)에서 가장 기름질 것이며, 옷과 음식의 근원은 천지 사이에 숨어 있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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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682
삼한(三韓)의 사람들에게 조를 내려 “과거에 10년간의 조세를 면제해 주었는데, 이미 끝났다. 또 더하여 귀화한 첫 해에 함께 온 자손도 아울러 역의 부과를 모두 면제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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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790
대련의 후손이고 곧 일본의 옛 백성인데 지금 한국(韓國)이라 부르고 있으니, 삼한(三韓)에서 새로 도래한 듯하여 부를 때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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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 799
천하 신민의 씨족은 많은데, 어떤 것은 근원은 같으면서 따로 갈라져 나오고 또는 근본은 다르나 성은 같은 것이 있다. 족보에 의거한다 해도 바꾼 지가 많이 경과하였고 호적을 조사해 보아도 근본과 줄기를 판별하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천하에 널리 알려 본래의 系帳을 바치게 하라. 삼한(三韓)의 여러 이방인들도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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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7 속일본기
壬申 外從5位下 韓國連源 등이, “源 등은 物部大連 등의 후손입니다. 무릇 物部連 등은 각각 사는 지역과 하는 일에 따라 180개의 姓氏로 갈라졌습니다. 이에 源 등의 선조 鹽兒는 父祖가 사신으로 간 나라의 이름으로써 物部連을 고쳐 韓國連이라 하였습니다. 그런 즉 大連의 후손이고 곧 日本의 옛 백성인데 지금 韓國이라 부르고 있으니, 三韓에서 새로 渡來한 듯하여 부를 때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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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三國³
그 후에 치원은 또한 일찍이 사신의 명령을 받들어 당나라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단 그때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문집에 태사 시중에게 올린 편지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伏聞東海之外有三國³ 其名馬韓·卞韓·辰韓 馬韓則髙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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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三國³
▐ 원래 삼한은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가 되자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가 임나가 사라지면서 고려, 백제 그리고 신라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중간 단계를 빼고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고려, 백제 그리고 신라로 대응시키다보니 이런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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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1 송사(1345)
定安國王臣烏玄明言 정안국왕 신 오현명이 말씀드립니다. 臣本以高麗舊壤渤海遺黎 신은 본래 고려의 옛 땅에 사는 발해의 유민입니다.
8333 SHARED
 
0981 송사(1345)
勅定安國王烏玄明 정안국왕 오현명에게 타이른다. 卿遠國豪帥 名王茂緖 奄有馬韓之地 介于鯨海之表 彊敵呑倂 失其故土 沉冤未報 積憤奚伸 그대는 멀리 있는 나라의 큰 우두머리이자 이름난 왕의 후손으로서, 마한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가 큰 바다 밖에 있는 탓으로, 강한 적에게 옛 땅을 빼앗기고도 맺힌 원한을 풀지 못하였으니 쌓인 울분을 어떻게 씻을 수 있겠는가. ▐ 마한에 대해서는 최치원의 인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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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0673 三韓³
삼한(三韓³)이 한 집안을 이루었으니 백성들은 두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비록 태평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또한 세상이 안정되었다고는 할 만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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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0692 三韓³
小囯先王春秋謚號偶與聖祖廟號相犯勑令攺之臣敢不惟命是從 然念先王春秋頗有賢德况生前得良臣金庾信同心爲政一統三韓³其爲功業不爲不多 우리나라의 선왕 춘추의 시호가 우연히 성조의 묘호와 중복되었다. 조칙으로 고치라고 하니, 내 어찌 감히 명령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하건대 선왕 춘추는 매우 훌륭한 덕을 지닌 분이시다. 더구나 살아생전에 김유신이라는 어진 신하를 얻어 한 마음으로 정사에 힘써 삼한³을 통일하였으니 그가 이룬 업적이 많지 않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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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삼국지, 견훤과 최치원의 글 그리고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마한의 실체를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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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제왕운기(帝王韻紀)
漢元立昭二甲申 (羅之□□一年也) 開國馬韓王儉城 (今西京也 以高句麗縣名立國) 한 원제 건소 2년 갑신년(신라가 건국한지 21년이 되던 해)에 마한의 왕검성(지금의 西京. 고구려현의 이름으로 건국하였다.)에서 건국하였다. ▐ 마한이 고려가 되었다는 최치원의 인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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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05.13 고려사
좌우도통사가 상언하기를, “以小事大 保國之道 我國家統三以來 事大以勤 작은 것으로서 큰 것을 섬기는 것은 나라를 보존하는 방도이니, 우리나라는 삼한을 통합한 이래로 부지런히 사대하여 왔습니다. 伏惟 殿下特命班師 以答三韓之望 원컨대 전하께서 특별히 회군을 명하시어 삼한의 기대에 답하시옵소서.” 라고 하였으나, 우왕과 최영이 듣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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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 三韓正統論
이씨조선 후기에는 기자조선의 정통성이 준왕을 따라 마한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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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01 조선왕조실록
폐하는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요(堯) 임금, 순(舜) 임금과 같은 성인으로서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의 계통을 이었으니, 오늘날 대황제(大皇帝)의 위호를 올리는 것은 옛 전례에도 맞고 지금의 제도에도 맞는 것으로서, 그 시기를 살펴보아도 옳고 예(禮)에 의거해 보아도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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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11 조선왕조실록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¹)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¹)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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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13 조선왕조실록
짐은 생각건대, 단군과 기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¹)’을 통합한 것이다. 올해 9월 17일 백악산의 남쪽에서 천지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으며, ... ▐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왕씨고려, 신라 그리고 견훤백제로 대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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