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半島의 古代 地名 > 喙 달┆達 달┆㖨 とく┆梁 도┆啄 たく┆涿 도

沙喙(524 봉평신라비)-沙㖨(720 일본서기)-沙涿(최치원)-沙梁(1145 삼국사기)┆㖨己呑·喙己呑·㖨國·喙地(720 일본서기)-達伐·達句伐(1145 삼국사기)┆啄評(636 양서)-喙評(801 통전) ▐ 달구벌과 서라벌의 지명에 나오는 喙·達·㖨·梁·啄·涿은 모두 같은 발음을 표기한 듯하다. 최치원은 신라인들이 연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북중국의 涿水에서 지명을 땄다고 했다.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524 喙部┆沙喙部┆岑喙部
29330#7533 SIBLINGS CHILDREN 7533
 
0636 啄評
29330#7546 SIBLINGS CHILDREN 7546
 
0720 㖨國┆㖨己呑┆沙㖨部
29330#26820 SIBLINGS CHILDREN 26820
 
0720 喙地┆喙己呑
29330#30916 SIBLINGS CHILDREN 30916
 
0801 喙評
29330#30924 SIBLINGS CHILDREN 30924
 
0900± 沙涿·漸涿
29330#30926 SIBLINGS CHILDREN 30926
 
1145 梁部┆沙梁部┆漸梁部·牟梁部
29330#30921 SIBLINGS CHILDREN 30921
 
1145 達伐·達句伐
29330#30917 SIBLINGS CHILDREN 30917
 
   喙 달┆達 달┆㖨 とく┆梁 도┆啄 たく┆涿 도
喙 달┆達 달┆㖨 とく┆梁 도┆啄 たく┆涿 도
29330#30927 SIBLINGS CHILDREN 30927
 
서라벌로의 유민
삼국사기(1145)에는 서라벌에 조선 유민들이 육촌을 이루고 있었다고 되어 있고 최치원은 진한 사람들이 연나라에서 도피해온 사람들이라고 했으나 일치하는 기록은 없다.
29330#30928 SIBLINGS CHILDREN 30928
 
㖨國·喙地-達伐·達句伐
倭는 新羅에 침입한 高麗와 전투를 치렀는데, 그곳은 이듬해에 倭가 다시 新羅와 전투를 치른 㖨일 가능성이 높다. 倭가 高麗를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자 新羅가 되찾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加羅를 고령으로 비정하는 것은 비교적 근거가 충분한데, 㖨己呑은 加羅와 新羅의 경계에 있었다고 하므로 달구벌에 어울린다. 이곳은 倭가 新羅를 치러 왔다가 나루에서 방향을 바꾸어 加羅를 쳤다는 이야기의 무대로도 어울린다.
29330#30910 SIBLINGS CHILDREN 30910
 
閼川 楊山村 → 梁部 → 中興部
蘿井은 楊山의 산기슭에 있었으므로 楊山은 남산이다. 閼川에 관한 기록은 형산강에 어울리므로 閼川 楊山村은 형산강을 건너는 나루 인근의 남산 기슭일 것이다. 이곳은 외부의 문물이 서라벌로 들어오는 관문이므로 신라의 시조가 이곳에서 났다는 이야기와도 어울린다. 한편, 蘿井은 楊山의 기슭에 있었지만 이 楊山은 月城에서 보았을 때 남쪽에 있기 때문에 훗날 南山이라 불린 듯하다.
29330#30908 SIBLINGS CHILDREN 30908
 
突山 高墟村 → 沙梁部 → 南山部
삼국사기에는 서라벌 주변의 明活山, 吐含山, 北兄山, 西兄山 등이 제사를 지낸 곳으로 나와 있다. 남산만 빠졌을 리는 없을 테니, 제사 기록에 있는 髙墟(沙梁)을 남산에 제사지낸 곳으로 추정한다. 고려사에도 沙梁을 南山部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남산은 남북으로 결이 나 있어 금오봉에 오르는 길 또한 이 결을 따라 났을 것이므로 그 입구인 포석정 일대를 突山 高墟村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蘿井과 가까워 혁거세 설화와도 어울린다.
29330#30909 SIBLINGS CHILDREN 30909
 
茂山 大樹村 → 漸梁部·牟梁部 → 長福部
삼국유사(1281)에는 仙桃聖母가 西述聖母라고도 되어 있어 仙桃山은 삼국사기(1145)의 제사 기록에서 西述로도 표기된 牟梁에 있었던 듯하다. 牟梁은 원래 茂山 大樹村이었다고 하므로 茂山은 仙桃山이 된다. 이곳은 蘿井에서 멀지 않아 仙桃聖母가 혁거세왕을 낳고 仙桃山에 들어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와도 어울린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西兄山도 이 仙桃山으로 비정된다.
29330#30907 SIBLINGS CHILDREN 30907
 
0236~0369
0236~0369
達과 喙은 발음이 같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연관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達伐은 236~261년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보이며 서라벌의 喙, 沙喙 그리고 牟喙은 달구벌에서 서라벌로 넘어올 때 처음 닿는 곳으로 원래 지명은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그리고 무산 대수촌이었다. 따라서 닭을 숭배하는 달구벌 사람들이 서라벌로 많이 이주하였고 그들이 서라벌을 장악하면서 지명도 바꾸고 김씨 왕도 배출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29330#30913 SIBLINGS CHILDREN 30913
 
0503 포항 냉수리 신라비
斯羅喙斯夫智王 사라의 달부 소속인 사부지왕┆沙喙至都盧葛文王 사달의 지도로 갈문왕┆喙尒夫智壹干支 달의 이부지 일간지┆沙喙壹夫智奈麻 사달의 일부지 내마┆喙眈須道使心訾公 달의 탐수도사 심자공┆喙沙夫那·斯利 달의 사부나와 사리┆沙喙蘇那支 사달의 소나지
29330#26835 SIBLINGS CHILDREN 26835
 
0524 울진 봉평 신라비
喙部 牟卽智 寐錦王 달부 모즉지 매금왕┆沙喙部 徙夫智 葛文王 사달부 사부지 갈문왕┆岑喙部 昕智 干支 잠달부 흔지 간지┆沙喙部 而粘智 太阿干支 사달부 이점지 태아간지┆沙喙部 十斯智 奈麻 사달부 십사지 내마
29330#26837 SIBLINGS CHILDREN 26837
 
0551± 단양신라비
喙部 伊史夫智 伊干▨ 달부의 이사부지 이간□┆喙部 西夫叱智 大阿干▨ 달부의 서부질지 대아간□┆喙部 比次夫智 阿干支 달부 비차부지 아간지┆沙喙部 武力智 阿干支 사달부 무력지 아간지┆鄒文村 幢主 沙喙部 噵設智及 干支 추문촌 당주 사달부 도설지 급간지┆勿思伐▨▨▨喙部 助黑夫智 及干支 물사벌□□□달부 조흑부지 급간지┆書人 喙部 ▨▨▨▨▨▨▨▨▨人 서인 달부 □□□□□□□□□인
29330#26867 SIBLINGS CHILDREN 26867
 
0591 喙
29330#26818 SIBLINGS CHILDREN 26818
 
0591 喙 부리 훼/괴로워할 훼, 부리 달
뜻을 나타내는 口(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彖(단→달)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彖은 멧돼지의 상형이다.
29330#26819 SIBLINGS CHILDREN 26819
 
0591 彖
29330#215 SIBLINGS CHILDREN 215
 
0591 彖 판단할 단
29330#26834 SIBLINGS CHILDREN 26834
 
0636 梁書
其俗呼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啄評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啄評 五十二邑勒┆왕성을 건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탁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하니, 이것은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나라 안에는 6군데의 탁평과 52군데의 읍륵이 있다.
29330#26828 SIBLINGS CHILDREN 26828
 
0636 啄
啄는 일본서기(720)와 삼국사기(1145)에서 사용된 예가 없다.
29330#26815 SIBLINGS CHILDREN 26815
 
0636 啄┆쫄 탁┆부리 주
29330#30905 SIBLINGS CHILDREN 30905
 
0636 釋日本紀(1300⁻) 啄 → たく
29330#26816 SIBLINGS CHILDREN 26816
 
0720 日本書紀
㖨國(4)┆㖨己呑(4)┆沙㖨(6) ❶ 沙喙部(524 봉평신라비) = 沙㖨部(720 일본서기)
29330#26840 SIBLINGS CHILDREN OPEN
 
0720 㖨
29330#26814 SIBLINGS CHILDREN 26814
 
0720 㖨 잠깐 웃을 록(녹)
29330#30117 SIBLINGS CHILDREN 30117
 
0720 釋日本紀(1300⁻) 㖨 → とく
29330#26817 SIBLINGS CHILDREN 26817
 
0720 日本書紀
喙地(2)┆喙己呑(2) ❷ 喙己呑(720 일본서기) = 㖨己呑(720 일본서기)
29330#26854 SIBLINGS CHILDREN OPEN
 
0801 通典
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喙評(喙呼穢反)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喙評 五十二邑勒 성을 침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달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한다. 달평은 6군데, 읍륵은 52군데 있다. ❸ 啄評(636 양서) = 喙評(801 통전)
29330#26830 SIBLINGS CHILDREN 26830
 
1060 新唐書
謂城為侵牟羅 邑在內曰喙評 外曰邑勒 有喙評六 邑勒五十二┆성을 침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달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한다. 달평은 6군데, 읍륵은 52군데 있다.
29330#26829 SIBLINGS CHILDREN 26829
 
1145 三國史記
沙梁(18) ❶ 沙喙部(524 봉평신라비) = 沙㖨部(720 일본서기) = 沙梁部(1145 삼국사기)
29330#26838 SIBLINGS CHILDREN 26838
 
1145 梁
29330#26822 SIBLINGS CHILDREN 26822
 
1145 梁 들보 량(양)
29330#26823 SIBLINGS CHILDREN 26823
 
1145 -0057 三國史記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29330#5473 SIBLINGS CHILDREN 5473
 
1145 0032 三國史記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사여하였다. 楊山部는 梁部라고 하고 성은 李로 하였으며, 高墟部는 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崔로 하였다. 大樹部는 漸梁部(牟梁部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성은 孫으로 하였으며, 干珍部는 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鄭으로 하였다. 加利部는 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裵로 하였으며, 明活部는 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薛로 하였다.
29330#30911 SIBLINGS CHILDREN 30911
 
1145 0032 三國史記
▐ 6세기의 금석문에는 梁, 沙梁 그리고 牟梁 대신 喙, 沙喙 그리고 牟喙이 나온다. 喙의 표기가 梁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금석문에 성씨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명의 개칭과 성씨의 사여 사이에는 오랜 시일이 있었던 듯하다.
29330#30912 SIBLINGS CHILDREN 30912
 
1145 0065 三國史記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29330#30914 SIBLINGS CHILDREN 30914
 
1145 三國史記
達伐城을 쌓고 나마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 ❷ 㖨己呑·喙己呑·㖨國·喙地(720 일본서기) = 達伐(1145 삼국사기)
29330#26860 SIBLINGS CHILDREN 26860
 
1145 三國史記
▐ 일본서기(720)는 6세기 신라의 금석문에 나오는 沙喙部를 沙㖨部로 표기하고 喙己呑을 㖨己呑으로도 쓰는 것으로 보아, 喙과 㖨을 구별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일본서기에 별개로 나오는 㖨國과 喙地가 같은 곳일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로 두 지역을 같은 곳으로 간주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 또 㖨國과 喙地는 삼국사기의 達伐과도 잘 어울린다. 만약 喙地가 達伐이라면 喙는 '달'로 발음되었을 듯하다. 喙는 '부리 달'이란 뜻도 있기 때문이다.
29330#2742 SIBLINGS CHILDREN 2742
 
1145 三國史記
왕이 達句伐로 도읍을 옮기려 하다가 실행하지 못하였다.
29330#26826 SIBLINGS CHILDREN 26826
 
1145 達
29330#26831 SIBLINGS CHILDREN 26831
 
1145 達 통달할 달
29330#26832 SIBLINGS CHILDREN 26832
 
1281 三國遺事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서 도피해 온 자들이므로 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고을과 동리 이름을 沙涿·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 사람들의 방언에 涿 자를 읽을 때 발음을 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혹 沙梁이라 쓰고 梁을 또한 道라고도 읽는다. ❶ 沙喙(524 봉평신라비) = 沙㖨(720 일본서기) = 沙涿(최치원) = 沙梁(1145 삼국사기)
29330#26862 SIBLINGS CHILDREN 26862
 
1281 涿
29330#26865 SIBLINGS CHILDREN 26865
 
1281 涿┆칠 탁
29330#26866 SIBLINGS CHILDREN 26866
 
1281 拒馬河
涿水
29330#26863 SIBLINGS CHILDREN 26863
 
1281 涿鹿县
29330#26864 SIBLINGS CHILDREN 26864
 
1750± 雌雄將雛(변상벽)
1750± 雌雄將雛(변상벽)
29330#30931 SIBLINGS CHILDREN 30931
 
달구벌의 어원
달은 닭의 경상도 사투리 발음이다. 달구는 다른 말과 연음될 때 발음의 편의상 묵음 ㄱ이 되살아나는 현상이다. 닭똥을 달구똥이라 발음하는 것은 그 사례다.┆일본서기에 나오는 卓國의 卓도 닭을 가리킨다고 한다.┆신라의 왕궁 터를 月城이라 부르고 그 내부의 연못도 月池라 부른 것도 모두 같은 연유로 본다. 月은 달(닭)을 훈독한데서 나온 표기이다.
29330#26813 SIBLINGS CHILDREN 2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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