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9 文州防禦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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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4.06.13+ ◾活涅水(活禰水)
석적환의 至乙離骨嶺益募兵趨活涅水와 사갈의 至乙離骨水曷懶甸活禰水를 보아 乙離骨水를 따라올라가 乙離骨嶺을 넘으면 曷懶甸의 活涅水(活禰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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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12.15ꜛ ◾ 吉州¹┆弓漢村
起雲嶺을 넘어 浮瑞川을 따라 내려오다 吉州²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이르면, 그곳이 바로 초기에 吉州¹를 설치했던 弓漢村이자 훗날의 西之委일 것이다. 왕고는 弓漢里 밖의 산이 연달아 있고 작은 길 하나로만 통행할 수 있어 關城을 쌓아 그 길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弓漢村에 성을 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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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12.15ꜛ ◾ 吉州¹┆弓漢村
1101년에 弓漢伊忽村 도령 麻浦 등 55인이 왕고에 입조하였고, 1104년에 오아속이 弓漢村을 토벌했을 때는 왕고에서 국경을 침범한 것으로 오해하였으며, 1108년에 9성을 쌓았을 때는 거란에 '女眞의 弓漢里는 우리의 옛 땅이므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우리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弓漢里 추장 중에는 요나라의 벼슬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이처럼 弓漢村은 이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吉州를 설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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