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6~0905 朝鮮→樂浪→高麗로 이어진 朝鮮史의 소멸
당나라가 668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를 676년에 요동으로 옮겼다는 구당서(945)의 기록을 끝으로 평양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上元三年二月 移安東府於遼東郡故城置┆901년에 궁예가 무성한 잡초로 꽉 차 있다(故平壌舊都 鞠爲茂草)고 한 평양이 역사 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905년에 평양 성주 검용이 궁예고려에 복속해 왔다는 삼국사기(1145)의 기록부터다. 平壌城主将軍黔用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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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0~0676 ❻ 新羅의 半島 統ー
韓國+靺鞨+帶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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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659 ❺ 新羅의 加羅 倂合
→ 百濟+新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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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1~0368 ❷ 三韓의 再編
三韓²┆百濟+新羅+任那┆韓國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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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7~0290 ❶ 三韓의 形成
三韓¹┆馬韓+辰韓+弁韓┆韓國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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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0 ~ 0676 ❻ 新羅의 半島 統ー
중국에서 다시 통일 왕조인 唐이 들어서자 新羅와 함께 百濟와 高麗를 차례로 무너뜨린 뒤 나눠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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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659 ❺ 新羅의 加羅 倂合
三韓³=百濟+新羅+髙麗┆任那의 낙동강 서쪽은 新羅가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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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0561 ❹ 百濟의 南下
高麗의 침공을 받아 百濟는 한강 유역을 잃고 금강 유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倭의 도움을 받아 任那의 섬진강 유역과 영신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 新羅와 함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하류와 상류를 나눠가졌으나 高麗와 新羅가 손을 잡자 포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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