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5.01 高麗史(1451) 2
그 풍속은 흉노와 같아서, 모든 부락에는 성곽이 없고 산과 들에 흩어져 살았다. 문자가 없어서 말과 노끈으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약속을 하였다. 그 지역에는 돼지·양·소·말 등이 풍부하고 준마가 많은데, 그 중에는 하루에 1,000리를 달리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은 사납고 용맹하여 어려서는 활로 새나 쥐 등을 쏘아 잡다가 커서는 활시위를 당기고 말을 달리면서 싸움을 익혀 강한 병사가 되지 않는 자가 없었다.
http://qindex.info/i.php?x=6633
• 1115.01 高麗史(1451) 5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김극수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서 여진의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고을태사라 하였다. 고을태사가 활라태사를 낳았고, 활라태사는 아들을 많이 두었다. 장남이 핵리발이고 막내아들은 영가였는데, 영가가 지혜와 용맹이 가장 빼어나 민심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 핵리발의 장남 오아속이 지위를 계승하였고, 오아속이 죽자 그 동생 아골타가 그 자리에 올랐다.”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i.php?x=1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