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1 高麗史
남경유수관 양주는 본래 고구려의 北漢山郡(南平壤城이라고도 한다)으로 백제의 근초고왕이 차지하였다. 근초고왕 25년에 南漢山에서 도읍을 옮겼다. 개로왕 20년에 이르러 고구려 자비왕이 쳐들어와서 漢城을 포위하자 개로왕이 나와 도망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었다. 그 해 아들 문주왕이 熊津으로 도읍을 옮겼다. 뒤에 신라 진흥왕 15년에 北漢山城으로 와서 국경을 정하였다. 진흥왕 17년에 北漢山州를 창설하고 軍主를 두었다. 경덕왕 14년에 漢陽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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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高麗史
1067년에 승격시켜 南京留守官이 되었는데, 근처 고을의 백성을 이주시켜 채웠다.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밀기에 의거하여 南京으로 천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주에 木覓壤이 있어 도성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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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高麗史
三角山(新羅稱負兒嶽) 漢江(卽沙平渡) 楊津(新羅時 北瀆漢山河 躋中祀) 삼각산(신라에서는 부아악이라 불렀다) 한강(곧 사평도다) 양진(신라 때의 북독인 한산하로서 중사에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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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高麗史 양주
肅宗元年 衛慰丞同正金謂磾 據道詵密記 請遷都南京云 楊州 有木覓壤 可立都城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밀기에 의거하여 남경으로 천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주에 목멱양이 있어 도성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였다. 삼각산, 한강 그리고 양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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