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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3.07 三國史記(1145) 高句麗
移居平壤東黄城 城在今西京東木覔山中 평양 동쪽의 황성으로 옮겨 살았다. 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
10967#825 SIBLINGS CHILDREN 825
 
1451 高麗史 양주
肅宗元年 衛慰丞同正金謂磾 據道詵密記 請遷都南京云 楊州 有木覓壤 可立都城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밀기에 의거하여 남경으로 천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주에 목멱양이 있어 도성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였다. 삼각산, 한강 그리고 양진이 있다.
10967#13629 SIBLINGS CHILDREN 13629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1451 서울 @남산
삼각산, 한강 그리고 양진이 속해 있는 양주의 서부에 있다.
10967#13631 SIBLINGS CHILDREN 13631
 
1856~1861 東輿圖 木覓山 黄城
▐ 황산은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는 삼국사기(1145)의 기록에 의해 표기한 거 같다. 목멱산에는 왕성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10967#30872 SIBLINGS CHILDREN 30872
 
대구 @앞산
달성의 남쪽에 있다.
10967#13632 SIBLINGS CHILDREN 13632
 
대성산성
10967#13651 SIBLINGS CHILDREN 13651
 
목멱신사
목멱산은 현재의 서울 남산을 일컫고, 목멱신사(木覓神祠)에 대한 이칭은 흔히 국사당(國師堂)이라고 하였다. 태조가 이조에 명하여 남산을 봉하여 목멱대왕으로 삼은 뒤 경대부와 사서는 제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목멱신사에 주로 빌었던 내용은 나라를 지키고 복을 비는 수호기복, 왕가나 왕손의 병을 구원하자는 구병 등이 대부분이다. 고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산악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고,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신당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 목멱신사이다.
10967#13625 SIBLINGS CHILDREN 13625
 
목멱은 앞산의 이두식 표현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10967#13623 SIBLINGS CHILDREN 1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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