蒼海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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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 ~ -0125 蒼海郡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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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 ~ -0125 蒼海郡
예군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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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 ~ -0125 蒼海郡
濊君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蒼海郡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예군이 중국과 내통한 경로는 황초령을 넘어 압록강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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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 ~ -0125 蒼海郡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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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0125 蒼海郡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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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8~-0125 창해군 설치
▐ 원래 예와 중국을 잇는 길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지났는데, 위만조선에 의해 그 길이 막히자 단단대령 북쪽에 있는 황초령을 넘어 압록강을 거쳐 한나라에 이르는 길이 개척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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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저의 기존 위치 비판 - 蒼海郡
예는 원래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한 듯하다. 그런데 위만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예군 남려는 28만구를 들어 한나라에 투항하는데, 이때는 단단대령 북쪽을 돌아 압록강을 거쳐 요동으로 가는 경로였을 듯하다. 이때 창해군이 설치되었다가 폐지되는데 20여년 후 설치된 임둔군 또한 예를 다스리는 군이었다. 단단대령 북쪽을 돌아가는 길은 황초령을 넘어가므로 예가 이 길을 이용했다는 것은 황초령 아래도 예라는 정황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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