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4.05 李朝 太宗 奏
照得 本國東北地方 自公嶮鎭歷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等州 俱係本國之地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으로부터 공주·길주·단주·영주·웅주·함주 등 고을을 거치는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 文州·高州·和州·定州·咸州·公嶮鎭 ➔ 公嶮鎭·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
┆公嶮鎭을 제외하면 1388년의 표문은 咸州까지만 언급했고 1404년의 표문은 咸州부터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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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4.05 李朝 太宗 奏 1258
1258년에 이르러 몽고의 산길보지 등 관원이 여진을 거두어 부속시킬 때에, 본국의 반민 조휘와 탁청 등이 그 땅을 가지고 항복하였으므로, 조휘로 총관을 삼고 탁청으로 천호를 삼아 군민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진의 인민이 그 사이에 섞여 살아서 각각 방언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이름지어 길주를 해양이라 칭하고, 단주를 독로올이라 칭하고, 영주를 삼산이라 칭하고, 웅주를 홍긍이라 칭하고, 함주를 합란이라 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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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4.05 ◾雄州→洪肯
1404년에 명나라가 洪肯의 천호 왕올란 등을 초유한다고 했을 때, 태종이 洪肯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윤관의 동북9성에 나오는 雄州를 끌어다 洪肯에 대응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洪原이 洪獻 또는 紅坑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되어 있어 명나라가 언급한 洪肯은 洪原이 맞는 듯하다. 그러나 그 洪肯이 雄州라는 태종의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기록에 나오는 정황과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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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4.05 李朝 太宗 奏 1388
1388년 2월에 호부의 자문을 받았사온데, 호부 시랑 양정 등 관원이 태조 고황제의 성지를 흠봉하기를, ‘철령 이북·이동·이서는 원래 개원의 관할에 속하였으니, 군민을 그대로 요동 관할에 소속시키라.’ 하였습니다. 본국에서 즉시 상항의 사건으로 인하여 배신 밀직 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조정에 가서 호소하여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본국에 환속시켜 주기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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