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1392 元明 교체 > 1404.05 李朝 太宗 奏

照得 本國東北地方 自公嶮鎭歷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等州 俱係本國之地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으로부터 공주·길주·단주·영주·웅주·함주 등 고을이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 우왕의 표문과 거의 같으나 公嶮鎭의 위치만 함흥 인근에서 길주 북쪽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는 이미 차지하고 있는 함흥 이북 지역을 지키고 조상의 묘소가 있는 孔州(경원)까지 차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1107 李朝 太宗 奏(1404)
至遼 乾統七年 東女眞作亂 奪據咸州迤北之地 高麗 睿王 王俁告遼請討 遣兵克復 1107년에 동여진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 이북의 땅을 빼앗아 웅거하고 있었는데, 고려의 예왕 왕우가 요에 고하여 토벌할 것을 청하고 군사를 보내어 회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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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李朝 太宗 奏(1404)
及至元初戊午年間 蒙古 散吉普只等官 收付女眞之時 本國叛民趙暉卓靑等 以其地迎降 以趙暉爲摠管 卓靑爲千戶 管轄軍民 由是女眞人民 雜處其間 各以方言 名其所居 吉州稱海陽 端州稱禿魯兀 英州稱三散 雄州稱洪肯 咸州稱哈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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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李朝 太宗 奏(1404)
1258년에 이르러 몽고의 산길보지 등 관원이 여진을 거두어 부속시킬 때에, 본국의 반민 조휘와 탁청 등이 그 땅을 가지고 항복하였으므로, 조휘로 총관을 삼고 탁청으로 천호를 삼아 군민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진의 인민이 그 사이에 섞여 살아서 각각 방언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이름지어 길주를 해양이라 칭하고, 단주를 독로올이라 칭하고, 영주를 삼산이라 칭하고, 웅주를 홍긍이라 칭하고, 함주를 합란이라 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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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 李朝 太宗 奏(1404)
至至正十六年間 恭愍王 王顓 申達元朝 竝行革罷 仍以公嶮鎭迤南 還屬本國 委定官吏管治 1356년에 이르러 공민왕 왕전이 원나라 조정에 신달하여 모두 혁파하고, 인하여 공험진 이남을 본국에 환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관할하여 다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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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 李朝 太宗 奏(1404)
聖朝洪武二十一年二月 承準戶部咨 該侍郞楊靖等官 欽奉太祖高皇帝聖旨節該 鐵嶺迤北迤東迤西 原屬開原 所管軍民 仍屬遼東所管 欽此 本國卽將上項事 因差陪臣密直提學朴宜中 齎擎表文 前赴朝廷控訴 乞將公嶮鎭迤北 還屬遼東 公嶮鎭迤南至鐵嶺 還屬本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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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 李朝 太宗 奏(1404)
1388년 2월에 호부의 자문을 받았사온데, 호부 시랑 양정 등 관원이 태조 고황제의 성지를 흠봉하기를, ‘철령 이북·이동·이서는 원래 개원의 관할에 속하였으니, 군민을 그대로 요동 관할에 소속시키라.’ 하였습니다. 본국에서 즉시 상항의 사건으로 인하여 배신 밀직 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조정에 가서 호소하여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본국에 환속시켜 주기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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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5.19 李朝 太宗 奏(1404)
지금 흠차하신 東寧衛 천호 王脩가 싸 가지고 온 칙유를 받들어 보니 ‘參散·禿魯兀 등처의 여진 지역의 관민인 등을 초유한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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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5.19 李朝 太宗 奏(1404)
상고하건대 參散 천호 李亦里不花 등 10처 인원이 비록 여진 인민에 속해 있기는 하나, 본국 지면에 와서 산 지가 연대가 오래고 호인 納哈出 등의 군사와 왜구의 침략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조잔하여 거의 다 없어지고 그 유종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으며 또 본국의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에 이바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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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5.19 李朝 太宗 奏(1404)
또 신의 조상이 일찍이 동북 지면에 살았으므로 현조 이안사의 분묘가 현재 공주에 있고 고조 행리와 조 이자춘의 분묘가 모두 함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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