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9 三國史記(1145) 百濟
가을 9월에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이끌고 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니,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을 잡았는데, 사로잡은 포로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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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三國史記(1145)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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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三國史記(1145)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그 사로잡은 적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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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三國史記(1145)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이끌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니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을 잡았는데 사로잡은 포로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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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그 사로잡은 적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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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고려와 百濟의 대립
▐ 이 전쟁은 고려와 백제가 최초로 충돌한 사건이다. 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과 대방이 고려에 병합되면서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게 되었지만 충돌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에 두 나라가 충돌한 것은 고려의 도읍이 백제에 가까이 옮겨간 결과가 아닐까? 요동으로부터 거듭되는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한 고려가 도읍을 남쪽으로 옮겼고 그 도읍과 백제와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백제를 침공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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