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04 高麗史(1451)
당초 우왕이 최영과 둘이서만 의논해 요동 공격을 결정지어놓고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날 최영과 우리 태조를 불러, “과인이 遼陽을 공격하려고 하니 경들은 힘을 다해야 할 것이오.”라고 당부했다. ... 좌군과 우군을 합친 총 병력은 38,830명이었고, 사역하는 인원이 11,634명이었으며 동원된 말이 21,682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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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5 高麗史(1451)
“만일 명나라 영토를 침범함으로써 천자로부터 벌을 받는다면 즉각 나라와 백성들에게 참화가 닥칠 것이다. 내가 이치를 들어서 회군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으나 주상께서는 잘 살피지 않으시고 최영 또한 노쇠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그대들과 함께 직접 주상을 뵙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자세히 아뢰고 측근의 악인들을 제거해 백성들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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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6 高麗史(1451)
이성계가 마침내 암방사의 북쪽 고개로 올라가서 대라를 한 차례 불게 하자 모든 부대들이 화원을 수백 겹으로 포위하고 최영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 우왕이 최영의 손을 잡고 울면서 작별하자 최영이 두 번 절하고 곽충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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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6 高麗史(1451)
다시 홍무 연호를 사용하는 한편 명(明)의 복색제도를 습용하고 몽고 복장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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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6 高麗史(1451)
원수들이 부대를 동원해 대궐을 지키면서 우왕더러 강화부로 갈 것을 요구했다. 우왕이 어쩔 수 없이 대궐을 나와 채찍을 잡고 안장에 올라, “오늘은 벌써 날이 저물었다.” 고 말하니 곁에 있던 사람들이 엎드려 눈물을 흘릴 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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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06 高麗史(1451)
당시 명(明)에서는 우왕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고려 정벌에 나서기 위해 황제가 친히 종묘에서 점을 치려고 사흘 동안 재계를 하다가 회군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재계를 중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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