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4.10 고려사(1451)
도독사 김방경으로 하여금 중군을 지휘하게 하고 박지량과 김흔을 지병마사로 임개를 부사로 김신을 좌군사로 위득유를 지병마사로 손세정을 부사로 임명했다. 또 김문비를 우군사로 나유와 박보를 지병마사로 반부를 부사로 임명해 삼익군이라 이름지었다. 이들은 원나라의 도원수 힌두와 우부원수 홍다구, 좌부원수 유복형과 함께 몽고·한족 연합군 2만 5천, 아군 8천, 초공·바닷길 안내자·선원 6천 7백 명과 전함 9백여 척으로 일본 정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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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4.10 고려사(1451)
이끼도(一岐島)에 이르러 천여 명을 죽이고 길을 나누어 진격하니 왜인들이 달아나는데 쓰러진 시체가 삼대같이 즐비했다. 날이 저물어 공격을 늦추었는데 마침 밤에 들이닥친 폭풍우로 전함이 바위 언덕에 부딪쳐 많이 침몰했으며 김신은 익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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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4.10 고려사(1451)
▐ 김방경, 흔두 그리고 홍다구는 모두 삼별초 토벌을 이끌었던 장수들이다. 일기도는 울릉도만한 섬인데 저 기록을 보아 많은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왕고군이 선봉에 섰으니 왕고가 일본의 원망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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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4.11 고려사(1451)
일본 원정군이 합포(경남 마산)로 귀환해 오자 충렬왕이 동지추밀원사 장일을 보내 노고를 위로하게 했는데, 귀환하지 못하고 전사한 자가 무려 13,500여 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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