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5~0289 魏略·三國志
옛 箕子의 후예인 朝鮮侯 準은 衛滿에게 쫓겨나자 바다를 경유하여 韓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韓王이라 칭하였고 그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韓氏라는 姓을 사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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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昔箕子之後朝鮮侯 옛 기자의 후예 조선후 ▐ -195년에 燕의 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箕子 또한 朝鮮으로 달아났고 그러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漢 文帝(-180~-157) 시기에 만들어져 尙書大傳에 수록되었다.┆조선왕 韓氏가 주나라로부터 조선에 봉해진 箕子의 후예였다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나라를 빼앗은 위만 왕조를 한나라가 정벌하고 낙랑군을 설치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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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 三國志(魏略) -0195±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가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不改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준의 아들과 친척 중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한씨 성을 바꾸지 않았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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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 三國志(魏略) -0195±
▐ 遷居海中 ➔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 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바다 가운데가 韓地로 바뀌고 韓王도 추가되었다. ┆조선에서 쫓겨난 韓王의 아들과 친척들이 조선에 남아서 韓氏 姓을 썼다거나 韓王의 후손이 끊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韓王 이야기가 지어낸 것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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