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0.04.01 日本書紀(720)
백제에 있는 일본의 사자가 바야흐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백제본기에는 4월 1일 경진에 日本 阿比多가 돌아갔다고 한다.) 백제왕 성명이 사자에게 “임나의 일은 칙을 받들어 굳게 지키겠다. 延那斯와 麻都의 일은 문책할 것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칙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하고 고구려 노 6구를 바치고 별도로 사자에게 노 1구를 주었다. (모두 爾林을 공격하여 사로잡은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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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0.04.01 日本書紀(720)
백제에 있는 일본의 사자가 바야흐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백제본기에는 4월 1일 경진에 日本 阿比多가 돌아갔다고 한다.) 백제왕 성명이 사자에게 “임나의 일은 칙을 받들어 굳게 지키겠다. 延那斯와 麻都의 일은 문책할 것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칙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하고 고구려 노 6구를 바치고 별도로 사자에게 노 1구를 주었다. (모두 爾林을 공격하여 사로잡은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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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0.04.01 ◾ 爾林
삼국사기에 550년 1월에 백제가 고려의 道薩城을 공격하여 빼앗았다고 되어 있고 일본서기에 550년 4월에 백제가 爾林에서 사로잡은 고려 포로를 왜에 바쳤다고 하므로 일본서기의 爾林은 삼국사기의 道薩일 가능성이 생긴다. 薛·舌·薩·瑟·西는 상호 호환되므로 道薩은 신라가 都西로 개칭한 道西일 수 있고 그러면 왕고 이후 지금까지 道安으로 불려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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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0.04.01 ◾帶山城
일본서기에 487년에 임나가 고려의 爾林에서 백제의 적막이해를 죽이고 帶山城을 쌓아 東道를 막고 나루를 통한 군량의 운송을 끊었다고 하므로 帶山城은 熊津에서 爾林에 이르는 뱃길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 뱃길은 東津江으로 불려지던 지금의 미호강이고 帶山城은 미호강 하류의 강변에 있는 지금의 唐山城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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