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5 三國史記(1145)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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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 「솔까역사」 新羅
及長聦明多智略乃名閼智(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알지라 했다.)✘ 以其出於金櫝(姓金氏→)名閼智(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이름을 알지라 했다.) ▐ 삼국유사(1281)에는 閼智即郷言小兒之稱也(알지는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일컫는 말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閼川 및 閼英과 함께 閼智의 閼도 알(egg)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智는 신라인의 인명에 많이 붙는 접미사다. 그리고 신라왕은 521년까지도 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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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2⁺ ❰❰ 0065 「솔까역사」 新羅
改始林名雞林 因以爲國號 시림을 계림으로 개칭하고 국호로 삼았다. ┆ 閼智부터 味鄒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다. 이것은 閼智 설화가 味鄒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김씨로서 처음 왕이 된 味鄒에게 자신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호를 閼智 설화에 나오는 雞林으로 바꾼 것도 味鄒 시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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