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05.31 계엄사 발표
19일에도 유언비어는 시내에 더욱 퍼져 이성과 냉철을 상실한 군중심리가 광주시내를 휩쓸게 되었고 흥분한 일부군중이 극렬한 시위를 감행하면서 화염병으로 파출소를 방화하는가하면 차량도 방화·파괴하였으며 유언비어도 더욱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 시시각각으로 조작되어 유포되었다.
http://qindex.info/i.php?x=5699
  1980.05.31 계엄사 발표
20일에는 흥분한 군중1만 여명이 시위하면서 MBC방송국을 방화, 시청파괴, 도청 앞 저지 경찰관 4명을 차로 역사하는가 하면, 시내 수 개 파출소를 파괴하면서 철야시위를 계속하였다.
http://qindex.info/i.php?x=5702
  1980.05.31 계엄사 발표
24일 폭도들은 시민의 호응과 집결을 유도하기 위해 위령제를 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1만5천명이 모인 가운데 궐기대회를 열었고, 특정인의 화형식을 가진 뒤 위령제는 연기 조치하였는데, 한편에서는 수습위원회가 강·온 양파로 갈린 채 각기 수습을 둘러싼 대결상을 보이면서 난동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http://qindex.info/i.php?x=5706
  1980.05.31 계엄사 발표
특히 계엄군이 진입, 진압하기전날인 26일에는 강경파 폭도들이 도청내의 지휘본부에 계엄군이 일부 차단지역에서 점차 압축해 들어가자 무장폭도들을 신속하게 기동 배치하는 조직적 지휘와 기동성까지 발휘하였으며 계엄군이 약속을 위반, 무력진주하려하니 시민들은 궐기 대항하자고 선동을 계속하여 이날 하오 3시께 5천여 명이 다시 궐기대회와 시위행진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5713
 1980.05.31 계엄사 발표
이번 사태에서 발생된 인명피해는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의 사망과 민간인 127명 군인 109명 경찰 144명이 부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 그리고 폭도들간의 강온파간 의사충돌에 따른 상호총격과 평소원한에 의한 살인자행 등에 의해 29명이 사망한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일단 밝혀졌는데 ...
http://qindex.info/i.php?x=3260
 1980.05.31 계엄사 발표
이번 사태에서 발생된 인명피해는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의 사망과 민간인 127명 군인 109명 경찰 144명이 부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폭도들간의 강온파간 의사충돌에 따른 상호총격과 평소원한에 의한 살인자행 등에 의해 29명이 사망한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일단 밝혀졌다. ※카빈총 사망자를 폭도에 의한 죽음으로 판단한 듯하다. 카빈총 사망자는 그 수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있기는 있었다.
http://qindex.info/i.php?x=9350

-